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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인은 많다.

그러나 일본에서 태어나 조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성장기를 보냈던
재일 한인으로서 한국에 터전을 잡고 인근 중국과 러시아로 사업무대를
넓히고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수리조선과 신조선업체인 부산 남성조선의 강동근회장(67)이 바로 그
흔하지 않은 주인공이다.

선망업체인 동삼수산, 어로장비 생산업체인 남성엔지니어링 및 동삼식품의
회장이기도한 그는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집주변에 무궁화를 심어놓고 일본인과 결혼한 장남을 집에서 내쫓기까지
했던 강회장의 신념은 한국에서 번 돈을 단 한푼도 일본으로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것.

최근에는 건강이 나빠져 대부분의 사업을 아들들에게 맡기고 요양을 하고
있지만 오늘날 번창한 사업의 모태가 됐던 안전상점 일만은 직접 챙기고
있는 강회장을 도쿄에서 기차로 두시간정도 거리에 있는 이토의 별장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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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아주 안좋다고 하던데 직접 뵈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신
것 같군요.

<> 강회장 =한때는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악화됐었는데 많이
나아졌어요.

요양을 한 덕분인 것 같아요.

아직도 심장은 좋지 않아서 비행기를 탈 수는 없어요.

한국에 벌여놓고 있는 사업이 많은데 갈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2세로서 오늘날 여러가지 사업체를
일구는데는 어려움이 많았을텐데요.

<> 강회장 =사업을 하면서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 항상 주변상황변화에 신경을 쓰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재일한국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어렸을때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때가 힘들었어요.

그때 겪은 고생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뿐이 아니고 당시 재일 한국인들이 대부분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까요.

그당시 부모님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나중에 저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사업을하는데 도움이 된것 같아요.

-첫사업으로 철강도매업을 하셨는데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 강회장 =별다른 계기는 없었습니다.

해방이 되고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신후 나는 도쿄의 매부밑에서
장사를 배웠습니다.

매부가 당시 하던 일이 철강장사라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한 2년 매부밑에서 일하다 독립했습니다.

철강장사는 그동안 계속해왔고 그밖에 여관 식당 안해본 사업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는 재일 한국인사업가중에서도 재력이 상위권에 든다고 하던데
비결이라도 있었습니까.

<> 강회장 =결정적으로 사업이 성공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해방된 시점에서 일본의 철강경기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공장들도 대부분 파괴되고 경제는 말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니까 철강수요가 급증합디다.

꽤 많은 돈을 벌었어요.

지금 일본은 경제대국이 됐지만 사실 한국전쟁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대국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양심적인 일본사람들은 지금도 TV토론회같은데서 이점을 인정합니다.

-사업이 번창하게 된 계기가 조국의 전쟁이었으니 착잡하셨겠습니다.

<> 강회장 =말도 못하지요.

사실 해방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조국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어요.

만주에 가면 좋겠는데 조선인은 갈 수 없다고 했을때 왜 나는
조선사람으로 태어났는가하고 억울해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다 비로소 조국이 한국이고 일본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사업을 해서 버는 돈의 10%는 무조건 한국으로 갖고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알게된 조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니 가슴이 아팠지요.

더구나 한국에는 부모님이 계셨어요.

-한국에서 사업을 하게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강회장 =일본에서 번돈으로 고향의 부모님에게 논을 많이 사드렸어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성공한 아들이 논을 많이 사드리는 것을
부모님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고향에 자주 들렀는데 그곳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구요.

실업자도 많아 취직부탁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에는 이런 사람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일자리를 줄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지만 알루미늄새시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사람들을 데려 올 수가 없었어요.

법적인 문제인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데려오는게 어려워지자 다른
사업을 생각했지요.

그때 누군가 제안한 것이 선망사업입니다.

당시 선망이라면 최신식 어선인데 한 선단을 마련하면 1백명의 선원을
고용할 수 있더군요.

그래서 일본에서 배를 사서 72년에 부산에다 동삼수산을 설립했습니다.

지금은 3선단으로 늘었습니다.

-남성조선은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 강회장 =81년에 부도난 남성조선을 인수했습니다.

그때도 누군가 찾아와서 인수를 제의하는데 거절하면 회사는 물론이고
많은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하게됐죠. 그래서 인수했어요.

-사업을 하시는 분이 그렇게 간단하게 회사인수를 결정하셨습니까.

<> 강회장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한국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에서였죠.

지금은 한국이 많이 발전했지만 60년대 많은 실업자를 보면서 그들을
도울 방법을 늘 생각했습니다.

순전히 사업적인 판단만 했다면 안했을 겁니다.

자랑같지만 30여년 가까이 한국에서 사업을 해왔지만 단 한번도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술을 먹어도 내돈으로 먹었지 회사돈은 한푼도 쓰지 않았지요.

한국에서 번돈은 모두 한국에 둔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주변에서 아직도 한국에서 사업을 하느냐는 소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한국사업체에 신경을 쓴만큼 일본에서 사업을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성공했을 겁니다.

한국에 투자한 재일 한국인들이 대부분 실패하는데 나는 그사람들이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한국에 가서 대부분 친척들에게 사업을 시킵니다.

사람을 제대로 쓰지 않고 그렇게 하는 사업이 성공할 리 없지요.

실패하면 친척들이나 욕하고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지요.

-중국대련에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러시아에도 진출하는등 사업범위를
확대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강회장 =러시아진출은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제가 처음일
겁니다.

사할린에 가있는데 당시 현대그룹회장인 정주영씨가 러시아에 온다는
기사가 났더라구요.

러시아 어선 한척이 수리를 하러 남성조선에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사할린에서 배를 수리하기위해 모스크바에서 철판한장 가져오는데
몇달이 걸리니까 가까운 한국에서 하면 시간도 단축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이거다 싶더라구요.

수리할 선박은 좀 많습니까.

즉시 사할린에 들어갔지요.

89년부터 현재까지 약 1백20여척의 러시아어선을 수리했습니다.

-이제까지 사업을 해서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

<>강회장 =특별한 비결은 없고 사업하는데는 신용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았지요.

아이들에게 특별히 이런 점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같아요.

지금도 아들들이 사업자금을 빌려달라고 하면 아주 높은 금리(일반은행
대출금리의 6배정도 되는 사채금리)를 받고 빌려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돈의 중요성을 모릅니다.

또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습니다.

-장남에게 남성조선을 맡기셨는데 일본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아무
망설임없이 집에서 내보내셨나요.

<> 강회장 =그랬습니다.

내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보냈습니다.

그런 정신상태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때 정말로 크게 실망했습니다.

자책도 많이 했구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느라 한달에 20일정도는 한국에 있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교육을 잘못시켜서 아이들이 조국을 잊었구나고 생각했지요.

나중에 일본인 며느리가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장남이 아버지 사업을
돕겠다고 해서 받아들였지요.

그때서야 순 한국식으로 결혼식을 치르게 됐죠.장남뿐 아니라 4남4녀중
결혼한 7명이 모두 한국식으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더 넓은 세계로 사업을 확대할 구상은 갖고 있습니까.

<> 강회장 =이제는 아들들이 나서서 해야할 때입니다.

나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머리를 써야 할때죠.

<대담 = 김형수국제1부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