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섰을때 현지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지난해말 현재 한국산차의 유럽시장 점유율이 1%를 밑돌고 있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대우측은 출발부터 달랐다.
세계적인 가수를 초청, 프랑크푸르트 브뤼셀등 유럽 전역에서 화려한
신차발대식을 가져 현지 딜러및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대우는 이어 신차에 에어컨 에어백 ABS등 3개품목을 기본으로 부착해
주었다.
거울까지도 사야하는 유럽인들에게 안전성과 쾌적함을 무료로 선물한
것이다.
때마침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더위가 장기간 극성을 부리자 에어컨을
부착한 대우차가 인기를 얻은 것은 당연하다.
이에 힘입어 하반기이후 한국산자동차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1.5%를 돌파,
유럽업체로부터 반덤핑규제등의 견제대상이 될 정도로 쾌조의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기업이 짧은 시간내 이같은 성과를 얻은것은 유럽시장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유럽이 세계 교역량의 40%를 차지하는데 반해 우리 수출액중 유럽이 차지
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한 사실이 말해주듯 유럽진출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에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등 유럽연합(EU)15개회원국에 대한 수출총액이 미국은
물론 일본 1개국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이는 유럽시장이 그만큼 공략하기에 까다롭다는 얘기도 된다.
LG전자의 공오식서구담당은 그이유를 유럽시장의 다양성에서 찾고 있다.
유럽의 경제통합이 진전되고 있으나 15개회원국은 여전히 문화적 언어적
독자성을 유지, 그만큼 시장잠식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EU 15개회원국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11개에 이른다.
인구 1,000만명에 불과한 벨기에에 물건을 팔려해도 프랑스와 네덜란드
2개언어로된 제품설명서를 부착해야 하는게 현실이다.
지역별 국민성의 차이도 극복해야할 난관이라고 대우자동차의 손태일
독일대표는 지적한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한 이른바 게르만 계통은 변화에
부정적이며 따라서 새로운 자동차모델에 접근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색상도 원색을 좋아하는 편이다.
반면 이탈리아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라틴 계열은 화려한 색상을 좋아하고
새로운 변화에 손쉽게 접근, 판촉이 그만큼 쉽다는 설명이다.
우리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가 약한 것도 또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기관인 렉스사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제품
의 대표주자인 현대자동차를 한국산으로 답한 소비자는 20%에 불과했다.
45%는 일본산으로 알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모른다"였다.
벨기에에 있는 전자체인점인 포토홀사는 한국산 가전제품의 품질은 일본산
에 손색이 없으나 10%이상 낮은 값이라야 판매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때문에 우리제품은 유럽시장에서 정확한 위치를 잡지못하고 있다.
가격에서는 중국 동남아산에 밀리고 브랜드이미지에서는 일본에 뒤지는
어중간한 위치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제품의 유럽시장 점유율이 1.6%수준에서 머물고 있는데 반해 중국제품
은 4%선을 넘어섰으며 태국 인도네시아등 여타 동남아국가 제품도 1%선을
돌파한 사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EU를 중심으로 15개회원국간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역내산업보호란
명분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도 우리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올들어 발효된 신반덤핑규정은 회원국 과반수 의결로 수입제한 여부를
결정, 역내산업 보호자들의 목소리는 보다 커지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유럽시장을 포기할수 없는게 현실이다.
결국 우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고 보다 치밀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전략을
펼치는 길만이 유럽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뿌리 내릴수 있는 방안
이라는게 현지 통상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현지화작업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다.
삼성전자가 스페인에서 소니등을 누르고 VTR 판매율 1위를 유지한 것은
지역활동을 통한 현지화에 성공, 주민들로부터 스페인제품이란 친근감을
심은 결과였다.
LG전자가 유럽 지역별 판매법인 대표를 현지인으로 교체하려는 움직임도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한 결정이다.
현지사정을 잘아는 사람이 법인을 끌어가는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은 분명 우리의 주요 경제파트너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 현대 LG 대우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들이 잇따라 유럽에 현지
생산기지를 세우고 양측간 통상규모도 연 200억달러수준을 넘어섰다.
양측간 동반자의식이 형성되는 지금 유럽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시장공략의 차원에서 벗어나 정착단계의 사고적 전환이 요청되는때"
라는 채훈 브뤼셀무공관장의 지적을 되새길때에 이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