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조성에 대한 수사확대는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 주가가 폭락하는 것외에는 자금시장에서 아직 뚜렷한 이상징후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융계는 이번 수사여파로 비자금과 연루되는 기업들이
자금수급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수사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23일 한국은행이 예정대로 환매채(RP)매각을 통해 1조2천1백20억원의
시중자금을 4일 만기로 흡수한 것은 "자금시장 이상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은 박재환 금융시장실장은 "비자금 수사와 관련한 큰 동요가
없는데다 시중자금이 풍부해 오는 27일 3조5천억원의 부가세 국고환수를
앞두고 예정대로 통화를 거둬들였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금리지표인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이날 연12.03%로
지난주말과 보합세를 보였다.

회사채 수익률은 지난 21일까지 계속 떨어져 이번주 초반 연11%대의
하락진입이 예상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주 회사채 신규발행 물량이 3천48백87억원으로 평균수준을
유지하는데다 11월 회사채 발행신청물량이 사상최고치인 3조4천5백41억원
으로 나타나 금리하락세가 멈춘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91일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유통수익률은 공급보다 금융기관
들의 수요가 많아 지난 21일보다는 0.05%포인트 떨어진 연 12.10%를
형성했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이날 연11%를 기록, 지난주말보다 0.5%포인트
뛰었다.

이날부터 새로 은행권의 지준마감(11월7일)이 시작되고 투자금융사에서
공무원연금등이 크게 빠져나가 자금잉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

자금시장 전문가들은 "통화수급 요인에 따른 금리변동외에 비자금
수사와 관련한 혼란은 주식시장말고는 자금시장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투자금융 고병재이사는 "콜금리나 회사채 수익률이 바닥권에
달했다는 금리추락에 대한 저항감과 25일 3조5천억원의 부가세가
납부되는 등 통화수급상의 요인으로 시중금리가 이번주에 일시적으로
반등세를 보일 것이지만 비자금 수사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신한투자금융 정상구기업금융부장도 "이날 3개월짜리 기업어음(CP)
할인금리가 연 12.1%로 지난주말과 보합세를 보였고 기업어음 발행물량이
급증하지 않을 것을 보면 일단 기업체의 자금가수요는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당좌대출 소진율이 비교적 낮은 30%대(금리는 12.59%선)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도 기업들이 자금수요를 크게 늘리지 않고 있음을
읽을수 있다.

하지만 비자금 수사여파는 심리적으로 자금시장에 상당한 압박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자금 예치로 구설수에 오른 신한은행 계열의 제일투자금융을 비롯한,
투자금융사 은행등 금융기관에는 이날 "비자금 수사여파로 자금시장에
별 영향이없느냐"라는 기업체및 개인고객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모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수사에 불똥이 여러 은행과 기업체로
튈 경우 자금시장이 동요할 것을 우려, 일부 금융기관들이 벌써
위험기업에 대한 대출을 미루는 등 자금운용을 보수적으로 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더욱이 내년부터 실시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가뜩이나 소득노출에
불안을 느낀 거액예금주들의 뭉칫돈이 금융권을 이탈하는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D투금 모임원도 "수사가 확대될 경우 오는 12월로 만기를 잡아놓은
개인들의 거액예금이 크게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 1.4분기까지 금리가 하향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되던
자금시장이 "비자금 수사"라는 돌출변수를 만나 어떤 영향을 받을지
금융계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정구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