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외환시장이 매우 불안정해지면서 기업들은 이에 대처할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기업이 환율변동위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이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조직적인 업무체계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과 같은 명목환율의 격심한 변동은 기업경영자들을
매우 당혹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환율변동추이의 갈피를 잡기 어렵고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것인지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기업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원화가치가 엔화와 달러화에 대해 계속 상승할 가능성에 대해 많이
우려하고 있는것 같다.

원화가치의 상승은 기업들에 반드시 불리한 것인가.

이를 유리하게 활용할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환율변화의 영향을 논의할때 우리는 흔히 수출입에 관련된 단기적 효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자주 본다.

이렇게 볼때 원화강세는 수출을 위협하고 수입은 쉽도록 만들어 국민경제와
기업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런 이유때문에 실제로 정부도 정책적으로 원화강세를 억제해온 경우가
많이 있다.

환율변동이 수출입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가.

여기서 먼저 이해해야할 중요한 것은 명목환율의 움직임 그 자체가 아니라
상대적 구매력의 변화를 나타내는 실질환율의 변화라는 점이다.

명목환율이 변화한다 하더라도 단순히 양국의 물가상승률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높음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명목가치가 하락하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기 때문에 수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율변동은 수출입에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얘기가 충분하다고 할수 없다.

세계화시대에 기업의 경영에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경쟁력을 구비하는
것이다.

환율변동과 관련해서도 이 변동이 기업의 국제경쟁에서의 위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장기적인 효과가 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은 현재의 수출능력보다는 오늘의 투자기회 포착능력
(소위 "실물옵션" 또는 "성장옵션")에 의해서 결정된다.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출가격경쟁력이 단기적인 능력지표라고 한다면
오늘 전략적 투자기회를 누가 어떤 조건으로 포착해 투자할수 있느냐 하는
것이 내일의 경쟁관계를 결정하는 장기적인 능력지표라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규모나 산업의 업종에 구분없이 많은 기업들이
이미 해외투자를 했거나 해외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더 이상 수출입만이 기업활동의 전부가 아니며 해외투자가 일부 대기업들의
전유업무도 아니다.

따라서 환율의 영향에 관한 논의의 초점은 수출입효과보다는 장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 또는 투자기회의 포착과 관련된
장기적 효과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기업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차원의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기업들에는 오늘의 투자가 내일의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이 투자결정은 통화가치의 변화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자국통화의 가치가 약하면 해외투자를 활발히 추진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상대국에 있는 경쟁업체가 통화강세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약세통화는 그나라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에 불리하게 작용
한다.

자국통화가치가 올라가면 당연히 당장의 수출은 어려워지는 반면 해외투자
는 (신규투자건 기존기업의 인수건)보다 쉬워진다.

한 국가의 경제적 영향력은 현재의 수출통계가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차지
하는 국가경제의 비중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다.

따라서 강한 통화는 기업의 해외진출을 가속화시켜 세계경제에서 국가경제
의 비중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투자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원가절감과 혁신도입등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통화의 강세에 의해 더욱 촉진될 것이다.

또 통화강세는 원자재 수입가격을 하락시켜 기업의 단기적인 수익성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국제시장에서 수출기업이 겪게 되는 단기적 어려움을 무시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견딜수 없는 한계기업들은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가게 될
것이고 국민경제적으로는 산업구조의 조정이 이뤄져 산업이 고도화 될수
있다.

이들 해외진출기업들은 약세인 현지통화가치를 활용해 유리한 입장에서
수출할수 있다.

강한 통화는 장기적으로 수출촉진에도 도움이 된다.

오늘날 교역에 환율이 미치는 영향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반면 직접투자는
점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대미 교역이 늘어나려면 대미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기업이 원자재의 조달원 제품시장 자금조달원과 투자
대상지역등을 범세계적으로 다양화시키는 분산전략은 또한 실질환율의 변화
에 대한 최선의 위험분산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기업들은 원화가치 상승을 두려워만 할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해
장기적으로 산업기반을 굳건히 다져나갈 책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정책적으로도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기회를 활용할수 있도록 외환정책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환율변화의 단기적 수출효과만을 고려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려 들기 보다는 장기적인 기업경쟁력의 제고라는 관점에서
외환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해 최근 연달아 발표되고 있는 기업의 해외투자 규제조치들은
한국기업들의 장기적인 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줄수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