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부의 저자세외교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난이 강하게 일고
있다.

미국의 통상압력과 중국 및 프랑스의 핵실험에도 강력한 대응을 못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여줬던 외무부가 이번에 일본총리의 망언에도 지각대응
을 하는 등 갈수록 맥을 못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노명외무장관은 12일 일본 총리의 한일합방 망언과 관련, 야마시타
주한일본대사를 외무부로 불렀다.

물론 무라야마총리의 발언에 ''유감''을 표시하기위해서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유감''이상의 사과나 해명요구등 강력한 항의를 기대했떤 대다수 국민의
바람은 무산됐다.

그나마 망언이 있은지 꼭 1주일뒤에야 겨우 ''유감''이 나왔다.

일본대사관이 국정감사 준비에 바빠 일본총리의 참의원본회의 발언을 제때
못챙겼다는 게 외무부의 ''변명''이다.

일본 고위인사의 망언이 나올때마다 외무부는 당국자 논평등을 통해
나름대로 공박을 해왔다.

그러나 대응수위는 국민감정과 상당폭 차이가 있었다는게 중론이다.

''외''무부는 국민정서 밖에 있는 부처냐는 비아냥도 그래서 나온다.

김영삼대통령까지 ''남북분단은 일본의 책임'' (일본경제신문회견)이 라고
강력하게 나오는 마당에 외무부만 바짝 엎드려 있다.

이에는 물론 당국자의 인식이 큰 몫을 한다.

정부의 댕이 유감수준에 그친데 대해 주무국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한일관계를 한면으로만 보면 흥분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과거사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실익이
없다"

이 당국자는 이어 "국민여론만을 의식, 강경으로 치달을 경우엔 파국으로
갈수밖에 없다"며 이해를 구했다.

이처럼 외무부가 일본에 유약한 이유는 ''일본에 대한 과잉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현재 외무부내에는 장관을 비롯한 지일파가 상당수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은 일본의 기본입장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고, 한국이 뭐라
해봐야 일본은 꿈쩍도 안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다는 것이 과잉이해론의 골자다.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기타 강대국에 대해서도 외무부의 저자세가 마치
습관처럼 굳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중국이나 프랑스의 잇따른 핵실험에도 외무부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다.

안승운 목사 납치사건에 대한 중국측의 조치결과 통보지연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배짱''은 없고 ''눈치''만 남았다는 느낌이다.

과거 군사정권때는 정통성이 없어 때로는 자세를 굽히기도 했다.

그러나 문민정부인 지금도 외무부의 행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11일 외무부 국정감사에서 이부영의원(민주)이 "요즘 외무부 조직분위기는
활력도 없고 너무 나른하다"는 한말이 그래서 공감을 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