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부도가 난 업체중에 덕산개발 유원건설 무등건설 뉴서울주택등
중견업체들이 많아 건설업계가 받는 충격은 더욱 크다.
특히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업체들은 간신히 진정되기 시작한 "부도설"
이 다시 확산되지 않을까 긴장하고있다.
건설업계의 경영난은 무엇보다 부도건수에서 나타난다.
올들어 부도가 난 건설업체는 이미 6백개를 넘어섰다.
대한건설협회및 전문건설공제조합 집계에 따르면 9월말 현재 일반건설업체
85개, 전문건설업체 5백16개사가 도산했다.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일반건설업체의 부도증가이다.
9월말 현재 일반건설업체부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65%가
증가했다.
전문건설업체도 지난해보다 부도건수가 77%나 늘어났다.
이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연말까지 8백여개사가 쓰러질 것이란 전망도
나와 있다.
건설업계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건설업계 경영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부동산경기 장기 침체에따른 아파트 미분양 적체, 면허개방으로 인한
경쟁격화, 부동산실명제 실시, 업체들의 무리한 사업다각화등이 부도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부도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주택미분양 심화
이다.
부도업체중에 주택건설업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주택경기는 지난 91년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신도시 건설을 계기로 주택사업부문 비중을 높였던 건설업체들은 이에따라
심한 타격을 받아왔다.
건교부가 집계한 주택 미분양물량은 8월말 현재 14만9천여가구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시울및 수도권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전국에서 미분양이 발생
하고 있다.
완공후 팔리지않고 남아있는 악성미분양물량만도 1만3천여가구를 헤아린다.
하지만 이같은 수치는 공식통계일뿐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물량까지 합하면 미분양 주택은 20만가구를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줄잡아 7조원 정도의 자금이 묶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분양이 난다고해서 업체가 사업을 중단할수 없다는데 문제는
있다.
과거에는 이익율이 5%미만인 경우엔 사업대상에서 제외되는게 통례였다.
그에비해 요즘엔 기획단계에서부터 손해를 감수하고 시작하는 사업이
대부분이다.
대량미분양을 안기보다는 이익율을 줄이는게 낳다는 판단때문이다.
지방에선 가구당 수백만원씩의 "서비스품목"이 제공되는게 일반화되고
있다.
게다가 사업을 하기위해선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각종 규제를 피해가야
한다.
땅을 매입해서부터 분양승인을 얻어내는데까지는 곡예를 하듯 "줄타기"를
해야하는게 우리 건설업계의 현실이다.
주택업체들을 가장 심하게 압박하는건 택지난이다.
분양성이 좋은 지역에선 땅을 구하기가 어렵다.
설사 땅이 있다해도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부르는게 보통이다.
최근 1-2년동안에는 땅을 산후에도 사업승인을 얻는데까지 만만치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또 하나의 장애가 등장했다.
업계에선 차라리 "급행료"를 지불하고 수월하게 사업을 하던 "옛날"이
좋았다는 얘기가 나돈다.
사업에서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건설업체 발행어음이 제도권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할인되지 않는다는 점도
건설업체의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건설업체들은 사채시장 의존도가 높을수밖에 없다.
전문건설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문건설업체가 원청업체로부터 전체
하도급공사비의 76.2%인 8조2천8백여억원을 어음으로 받았다.
업체들은 이 가운데 18.8%인 1조5천5백여억원을 사채시장에서 현금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채시장 이용은 금전상의 직접적 손실을 의미한다.
결국 택지난에서부터 자금융통어려움 분양성급락까지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악순환속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는 건 중소건설업체들이다.
대형업체들은 자금력이 있어 그나마 버티기가 좀 수월하다.
일부 지역에서 미분양이 발생해도 다른지역의 땅을 매입, 새로운 전략을
세워 사업을 추진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업체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연간 1-3개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게 고작이다.
초기분양률이 30%미만인 악성미분양이 한 지역에서만 발생해도 거의
쓰러지고 만다.
서울지역 택지확보의 거의 유일한 수단인 재개발 재건축도 중소업체에겐
"그림의 떡"이다.
웬만한 지역에선 가구당 이주비가 1억원을 넘어서는 탓이다.
주택건설시장에 "지방에선 미분양, 서울에선 자금력경쟁"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중소주택업체들의 사업기반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들어선 중소업체는 물론이고 중견업체로까지 부도가 급속하게
번져가고 있다.
이같은 추세라면 대형업체도 안심할수없는 상황이 온다는 위기감이
건설업계에 확산되고 있다.
건설업체의 부도는 한 업체의 부도로 끝나는게 아니라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건설업계를 지원하는 실질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