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17세기는 자연과학분야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과학혁명의
시대"로 불린다.

영국의 베이컨이 귀납법을 도입한 것도,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만들고
파스칼이 기압의 차이를 증명한 것도 이 시대였다.

또 데카르트 뉴튼등도 이때 인물이었다.

17세기는 "천재들의 세기"였으며 과학혁명이 이뤄졌으나 유럽역사상
가장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이 도처에서 성행했다.

마녀사냥은 미신과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신과 사회가 겪는
불행의 책임을 특정한 개인에게 돌리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가뭄, 홍수가 나거나 괴질이 돌면 사람들은 혼자사는 여인이나 미망인등을
마녀로 몰아 마녀사냥을 벌이고 액운을 막았다고 생각했다.

마녀사냥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공포를 해결하는 일종의 사회적
카타르시스행위였다.

20세기 정보사회에서 또 다른 마녀사냥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1~2년간 국내 PC통신망과 대학 연구소등은 알 수 없는 해커에 의해
시스템이 파괴되고 그로인해 서비스가 중지됐다는 발표를 잇따라 내놓았다.

해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시스템파괴현상은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나 해커에 의해 시스템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해커의 침입경로와 파괴방법, 탈출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등 해커라고
짐작만 할 뿐 누가 언제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다.

각종 정보시스템을 관리하는 시스템관리자들은 "시스템의 오류나 데이터의
파괴등은 대부분 관리전산인력의 실수나 기계적 장애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또 "사용자들이 비밀번호를 허술하게 관리해 도둑질 당한다"고 지적한다.

평소에는 해커의 침입에 완벽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하다가도
고장원인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우면 어김없이 "해커 침입"을 들먹거린다.

해커의 침입으로 서비스가 중지되었다고 하더라도 "해커"라는 말이
시스템관리자나 해당기업에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얼굴도 없는 해커를 내세워 서비스 중지에 불만인 사용자들을 달래려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해커의 침입을 막지 못한 것 역시 시스템관리자의 책임이며 "내 탓이요"
라는 성실한 자기고백이 아쉬운 때다.

< 김승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