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팔목 비틀기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시장개방을 둘러싼 한미간의 줄다리기를 보며 생각난 말이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물론 한국이다.

힘센 불량배앞에서 팔목이 비틀릴 것은 불문가지이니 아픔을 느끼기 전에
있는 돈 다 내주어야 한다.

그나마 돈만 뺏기고 풀려나면 다행이고 내준 돈이 얼마 안된다고 한대 더
얻어맞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비유가 좀 과장되긴 했어도 세계의 경제대국 미국이 통상문제를 놓고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에 화살을 돌리고 끝내는 조세주권주의마저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게 사실이다.

국가간의 문제를 다루는데 감상은 필요없고 오직 냉정한 논리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자유무역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무차별적으로 다른 나라에 자국의
입장만을 강요하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과연 세계무역기구(WTO)를 만들어
전세계국가들의 공동번영을 추구한다는 흐름에 맞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시장개방과 관련, 한국은 그동안 일방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형편에 있었다.

지난해의 경우 한국정부는 수입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8%로 내리고
고액소득자의 외제차보유신고를 폐지하기로 했으며 광고자유화 형식승인
제도의 개선등을 약속했었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8%의 관세를 미국수준인 2.5%로 낮추고 자동차관련
내국세를 개선할 것등을 요구해 왔다.

현행의 관세율이 이미 유럽연합보다도 낮은 수준인데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사정을 감안해 만들어 놓은 자동차관련 세율구조도 뜯어 고쳐야 하고,
심지어는 미국산자동차의 시장점유율도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자유무역주의의 정신에 맞는지, 경제논리에 맞는 얘기인지
미국 정부관계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또 지난해 개방조치이후 협상의 주역은 미국이었지만 실제로 득을 본 것은
유럽자동차업체들이었다는 점을 미국 정부나 업체관계자들은 알아야만 한다.

사실 지난해 협상이후 한국의 개방조치는 이미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차판매대수는 94년보다 99%나 증가했고 금년들어서는 7월까지
113%나 증가했다.

수입자동차증가율이 연간 100%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한국정부가 교묘하게
외국산자동차의 수입을 막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과의 통상지표를 봐도 한국의 대미무역적자는 눈덩이 처럼 커지고
있다.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이미 48억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상반기중 미국의 대한수출은 124억5,000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이 54.6%에 이른다.

연말까지는 한국이 미국의 제4위 수출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재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클린턴정부가 미자동차업계의 불평을 마냥
외면할 수 만은 없다는 점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를 만들어 놓고 이 기구의 결정이 미국의 이익을 해친다고
미국의 분쟁조정재고위원회가 세번이상 판정할 경우 세계무역기구를 탈퇴할
수도 있다는 법을 만들어 놓은 나라이니 한국에 대한 이정도의 요구야 별로
무리수가 아니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당하고야 있을 수 만은 없지 않을까.

나름대로 미국의 요구에 대한 반대논리도 정리하고 있을 수도 있는
불합리한 관행이나 제도를 뜯어고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통상전문가도 키워야 하고 정치논리로 경제를 다루는 일도 없어야 한다.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정부관계부처가 협상의 주역을 가리기 위해 설전을
펼치는 따위의 한심한 상황도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

국내에서 비판을 받아왔고 끈질긴 요구가 있었음에도 꼼짝하지 않던 한국
정부가 강대국앞에서 소리한번 내지 못하고 내국세율을 고치겠다고 약속하는
따위의 행태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