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언어폭력의 사회 .. 최연지 <방송작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여보,나예요" " 어,무슨 일이야.회사로 전화를 다하게" " 삼풍백화점
무너졌단 뉴스 들었어요?" "음" " 나 오늘따라 그시간에 거기서 찬거리
보지않구 오전에만 잠깐 들렀다 왔거든요" "다행이군" " 나 지금 멀쩡하게
집에 있는데 행여 당신이 걱정할까해서 전화했어요" "알았어 끊어"
위에서 전화 건 사람은 "간큰 남자" 대응탄으로 나온 "재수없는 여자"
시리즈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여자다.
"간큰 남자"시리즈는 가정에서 아내의 지위가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껏 아내가 남편한테 바로 그 조목대로 당해왔음을
역설적으로 열거한다.
마찬가지로 "재수없는 여자"시리즈 역시 아내의 사망보상금을 노리는
남편이 많다는 얘기라기보다는 월급마저 손대볼 틈 없이 아내 손에 든
온라인통장에 직송되는 요즘의 월급쟁이 남자들, 돈 씀씀이에서 옛날보다
더 왜소해지고 꾀죄죄해진 요즘 남자들의, 막말로 "돈벼락이라도 맞아죽고
싶다"는 서글픈 욕망의 역설적 희학일 뿐이다.
사실 이도저도 다 공허하다. 그저 말, 말 뿐이니까...
"양기가 죄 입으로 올랐다"는 말이 있듯이 행동이 자유자재로 되지
않을수록 입으로 더 떠드는 법. 진실이 없는 언어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싫든 좋든 언어의 홍수속에 하루하루를 살고있다.
아침에 잠을 깨며 듣는(새소리가 아니라) 어머니 혹은 아내의,가정마다
각기 다른 톤의 "일어나라"에서부터 버스나 택시에서 들을수밖에 없는
라디오소리,직장상사나 웃어른 기타 힘있는 자가 자발적으로 하는 소리등
그야말로 쏟아지는 언어의 대홍수 속이다.
그중에는 정보를 주는 말,해야할 바를 일깨워주는 말도 있지만 적잖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의 폭력이다.
우리사회의 언어폭력현장은 우리사회 특유의 역동성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얽힌 참상이라 검증도 어렵다.
그저 전치 몇주 진단서를 떼서 가해자를 응징할길 없는 피해자 가슴속에
피멍만 나날이 깊어갈 뿐.. 폭언,즉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모욕하는 말만 언어폭력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아무 애정도 배려도 없는 관심의 표현도 일종의 비수다.
직장에서 "미스 김은 시집이나 가지 왜 그러구 있어"와 같은 말,혹은
가정에서 "애들 성적 엉망인데 집구석에서 뭐하고 있는거야" 이런 말들이
"미스김"에 대한 배려이며 아내와 아이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애착에서
나온 말이겠는가.
"아니,뭐 그정도 흔히들 하는 말을 가지고 뭘."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습관성 상습 폭력범이다.
이들의 치사한 점은 상대를 어김없이 역펀치가 불가능한 대상중에서
고른다는 것이다.
맘대로 휘둘러도 후환이 없는 약자를 고르는 것이다.
내가 "무심코" 혹은 "홧김에" 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씨를
뿌리고 그것이 뿌리를 내려 이윽고 커다란 나무로 자라날수 있음을, 혹은
자라나고 있음을 본다.
부하 여직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당신 딸이 직장에서 상사
에게 들었으면 하는 말을 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 남편에게 당신의 딸이 그 남편한테
들었으면 하는 바로 그 말을 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차라리 침묵해달라고..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니까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4일자).
무너졌단 뉴스 들었어요?" "음" " 나 오늘따라 그시간에 거기서 찬거리
보지않구 오전에만 잠깐 들렀다 왔거든요" "다행이군" " 나 지금 멀쩡하게
집에 있는데 행여 당신이 걱정할까해서 전화했어요" "알았어 끊어"
위에서 전화 건 사람은 "간큰 남자" 대응탄으로 나온 "재수없는 여자"
시리즈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여자다.
"간큰 남자"시리즈는 가정에서 아내의 지위가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껏 아내가 남편한테 바로 그 조목대로 당해왔음을
역설적으로 열거한다.
마찬가지로 "재수없는 여자"시리즈 역시 아내의 사망보상금을 노리는
남편이 많다는 얘기라기보다는 월급마저 손대볼 틈 없이 아내 손에 든
온라인통장에 직송되는 요즘의 월급쟁이 남자들, 돈 씀씀이에서 옛날보다
더 왜소해지고 꾀죄죄해진 요즘 남자들의, 막말로 "돈벼락이라도 맞아죽고
싶다"는 서글픈 욕망의 역설적 희학일 뿐이다.
사실 이도저도 다 공허하다. 그저 말, 말 뿐이니까...
"양기가 죄 입으로 올랐다"는 말이 있듯이 행동이 자유자재로 되지
않을수록 입으로 더 떠드는 법. 진실이 없는 언어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싫든 좋든 언어의 홍수속에 하루하루를 살고있다.
아침에 잠을 깨며 듣는(새소리가 아니라) 어머니 혹은 아내의,가정마다
각기 다른 톤의 "일어나라"에서부터 버스나 택시에서 들을수밖에 없는
라디오소리,직장상사나 웃어른 기타 힘있는 자가 자발적으로 하는 소리등
그야말로 쏟아지는 언어의 대홍수 속이다.
그중에는 정보를 주는 말,해야할 바를 일깨워주는 말도 있지만 적잖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의 폭력이다.
우리사회의 언어폭력현장은 우리사회 특유의 역동성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얽힌 참상이라 검증도 어렵다.
그저 전치 몇주 진단서를 떼서 가해자를 응징할길 없는 피해자 가슴속에
피멍만 나날이 깊어갈 뿐.. 폭언,즉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모욕하는 말만 언어폭력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아무 애정도 배려도 없는 관심의 표현도 일종의 비수다.
직장에서 "미스 김은 시집이나 가지 왜 그러구 있어"와 같은 말,혹은
가정에서 "애들 성적 엉망인데 집구석에서 뭐하고 있는거야" 이런 말들이
"미스김"에 대한 배려이며 아내와 아이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애착에서
나온 말이겠는가.
"아니,뭐 그정도 흔히들 하는 말을 가지고 뭘."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습관성 상습 폭력범이다.
이들의 치사한 점은 상대를 어김없이 역펀치가 불가능한 대상중에서
고른다는 것이다.
맘대로 휘둘러도 후환이 없는 약자를 고르는 것이다.
내가 "무심코" 혹은 "홧김에" 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씨를
뿌리고 그것이 뿌리를 내려 이윽고 커다란 나무로 자라날수 있음을, 혹은
자라나고 있음을 본다.
부하 여직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당신 딸이 직장에서 상사
에게 들었으면 하는 말을 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 남편에게 당신의 딸이 그 남편한테
들었으면 하는 바로 그 말을 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차라리 침묵해달라고..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니까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