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지방정부의 목소리가 커졌다.

중앙정부에 대한 요구건수도 많아졌고 요구하는 내용도 종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종전에는 중앙정부와 대면하는 자리에서는 지역숙원사업의 해결을 요구하는
게 주류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중앙의 권한을 이양하라든지 지방이 떠맡아온 부담을
중앙이 지라는 요구를 공공연하게 제기하고 있다.

22일 열린 제17차 시도경제협의회는 이같이 달라진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역학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방자치단체장 직선 이후 처음 열린 시도경제협의회 답게 중앙과 지방정부
의 관계가 앞으로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우선은 요구건수가 많아졌다.

15차 회의에선 30건을, 16차땐 48건을 요구했으나 이번엔 59건의 요구사항
을 꺼내놓았다.

그만큼 지역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욕구수위가 높아졌고 위상이 강화
됐음을 엿보게 한다.

특히 요구사항의 내용이 지역개발 일변도를 탈피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권한과 부담관계의 재정립,제도개선등 중앙과 지방간의 자리매김을 다시
해보자는 시도가 분명해 보였다.

예를들어 부산시는 항만관리권 이양을, 전라남도는 불법어업 범칙금을
지방재원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경상남도는 개발제한지역 관리비용을 국가가 지라고 촉구했다.

권한을 넘겨주던가 비용을 맡으라는 주문인 셈이다.

국토개발계획을 다시 짜라든지(전라북도) 공업단지 개발과 관리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요구(대전시)한 것 등은 중앙정부 고유기능에 까지 간여
하겠다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지역이기주의 양상도 나타났다.

강원도는 먹는물 수원개발 허가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자기지역의 자원을 함부로 빼내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인천시는 개발제한지역 안에 있는 공원을 민자유치로 개발해 사용하겠다고
설명했다.

개발제한지역은 손도 못대게하는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요구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얘기다.

경기도는 수도권내에서 대기업의 공장이전및 증설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로썬 대부분 곤란하다는게 정부측의 설명이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마치 하나로 뭉쳐 정부를 공격하듯이 쏘아댔다.

종전과 같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따를 것으로만 보지 말라는
태세다.

앞으로 물가관리등 정부차원에서 추진하는 경제시책들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결국 상하관계로 인식해 왔던 중앙과 지방간의 구도를 수평적 협조관계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싯점이 됐다는 얘기다.

중앙과 지방간에는 권한과 재원의 재배분이 따라야 하며 동시에 지방간에도
지역이기주의를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게 행정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상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