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인] 마누엘 빌라르 <필리핀 C&P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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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필리핀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부동산.건설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은 마누엘 빌라르, 앤드류 탄, 로버트 존 소브레페나이다.
필리핀 언론은 이들을 신흥 부동산갑부 3인방으로 통칭한다.
모두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들로 최근 몇 년 사이 유명인사 대열에
끼인 40대의 억만장자들이다.
필리핀 언론이 이들을 집중 조명하고 있는 것은 그러나 단순히 돈이 많다
거나 그들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의 덩치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보여준 뚝심과 직관력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필리핀 건설시장은 물론 경제전체의 큰 흐름이 바뀌어질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탓이다.
이들의 삶이 필리핀 서민들에 희망과 의지를 심어주고 있는 점도 빼놓을수
없다.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C&P홈의 마누엘
빌라르(45)사장은 특히 필리핀 사람들의 우상으로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트럭 한대로 시작해 이제는 280억페소(미화 11억달러)의 재산가가 된 그가
보여준 성실성과 배짱 그리고 아무도 따라올수 없는 직관력이 성공한 삶의
교과서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빌라르는 그리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위직 공무원으로 새우를 잡아 내다팔기도 했던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좋은 옷, 좋은 음식은 물론 편안한 잠자리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10대후반까지만해도 가난은 대물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 그러하듯 좌절하지 않았다.
단돈 400달러를 빌려 트럭 한대를 구입,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닐라시 건설현장에 자갈이나 모래등 건자재를 운반하는 고된 일이 나날이
반복됐으나 차안에서 졸며 시간을 때우지는 않았다.
싣고 온 짐을 부릴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에 건설현장의 목수며 미장공등을
만나 집을 짓는데 필요한 전문지식을 낱낱이 체득했던 것이다.
그는 곧 건축업에 매력을 느꼈다.
26살이 되던 해까지 20채의 집을 지어판 결과 적잖은 돈을 손에 쥘수
있었다.
20대 중반의 혈기는 자신감을 더해줬고 사업은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고비를 맞았다.
83년부터 86년까지 마르코스정권 붕괴등 정정불안이 지속되면서
필리핀인들의 이민행렬이 줄을 이었고 그도 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를
놓고 결단해야 했다.
그는 안전보다는 위험을 택했다.
정정불안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헐값에 나와있는 땅을 눈에 띄는
대로 사들여 저소득자를 위한 소형주택을 지었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필리핀정세는 곧 안정됐으며 경제는 빠른 속도로 나아져 주택수요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해외건설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건설노동자들은 물론 역이민자들도
부동산경기활성화에 한몫했다.
그결과 C&P홈은 지난해 매출 31억페소, 순익 8억1,500만페소를 올린
필리핀에서 가장 큰 서민주택건설업체로 성장했던 것이다.
"남들이 떠날 때 남기로 한 그의 결정은 일종의 도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우물을 파는 외고집과 실패를 두려워 않는 용기,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한 추진력이 그의 성공을 담보했지요"
필리핀 서민들의 주거환경을 크게 개선하는데 기여한 그의 발걸음에 관심을
쏟고 있는 동료들의 평가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8일자).
이름은 마누엘 빌라르, 앤드류 탄, 로버트 존 소브레페나이다.
필리핀 언론은 이들을 신흥 부동산갑부 3인방으로 통칭한다.
모두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들로 최근 몇 년 사이 유명인사 대열에
끼인 40대의 억만장자들이다.
필리핀 언론이 이들을 집중 조명하고 있는 것은 그러나 단순히 돈이 많다
거나 그들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의 덩치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보여준 뚝심과 직관력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필리핀 건설시장은 물론 경제전체의 큰 흐름이 바뀌어질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탓이다.
이들의 삶이 필리핀 서민들에 희망과 의지를 심어주고 있는 점도 빼놓을수
없다.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C&P홈의 마누엘
빌라르(45)사장은 특히 필리핀 사람들의 우상으로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트럭 한대로 시작해 이제는 280억페소(미화 11억달러)의 재산가가 된 그가
보여준 성실성과 배짱 그리고 아무도 따라올수 없는 직관력이 성공한 삶의
교과서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빌라르는 그리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위직 공무원으로 새우를 잡아 내다팔기도 했던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좋은 옷, 좋은 음식은 물론 편안한 잠자리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10대후반까지만해도 가난은 대물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 그러하듯 좌절하지 않았다.
단돈 400달러를 빌려 트럭 한대를 구입,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닐라시 건설현장에 자갈이나 모래등 건자재를 운반하는 고된 일이 나날이
반복됐으나 차안에서 졸며 시간을 때우지는 않았다.
싣고 온 짐을 부릴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에 건설현장의 목수며 미장공등을
만나 집을 짓는데 필요한 전문지식을 낱낱이 체득했던 것이다.
그는 곧 건축업에 매력을 느꼈다.
26살이 되던 해까지 20채의 집을 지어판 결과 적잖은 돈을 손에 쥘수
있었다.
20대 중반의 혈기는 자신감을 더해줬고 사업은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고비를 맞았다.
83년부터 86년까지 마르코스정권 붕괴등 정정불안이 지속되면서
필리핀인들의 이민행렬이 줄을 이었고 그도 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를
놓고 결단해야 했다.
그는 안전보다는 위험을 택했다.
정정불안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헐값에 나와있는 땅을 눈에 띄는
대로 사들여 저소득자를 위한 소형주택을 지었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필리핀정세는 곧 안정됐으며 경제는 빠른 속도로 나아져 주택수요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해외건설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건설노동자들은 물론 역이민자들도
부동산경기활성화에 한몫했다.
그결과 C&P홈은 지난해 매출 31억페소, 순익 8억1,500만페소를 올린
필리핀에서 가장 큰 서민주택건설업체로 성장했던 것이다.
"남들이 떠날 때 남기로 한 그의 결정은 일종의 도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우물을 파는 외고집과 실패를 두려워 않는 용기,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한 추진력이 그의 성공을 담보했지요"
필리핀 서민들의 주거환경을 크게 개선하는데 기여한 그의 발걸음에 관심을
쏟고 있는 동료들의 평가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