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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은 도쿄 세계대량경제학회 7차총회에 참석한 해외 석학
들과의 대담시리즈 마지막편으로 아오키 마사히코 미 스탠퍼드대 교수와
안충영 중앙대교수의 대담을 싣는다.

계열화제도등 일본기업의 행동양식을 이론화해 세계화시킨 대표적
학자인 아오키교수는 ''일본경제는 어디로-구조조정의 과제''를 주제로
진행된 이 대담에서 "일본에 시급한 과제는 실물경제에 부응하는 금융
산업의 효율화와 기업내 계열연공서열 관행의 개선"이라며 "한국도 이
점에서 예외일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의 향후 경제협력 방향에 대해 "수평적 분업관계를
심화해나가야한다"며 "한국은 멀지않아 일본을 위협하는 산업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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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충영교수 =일본경제가 지난 3년여동안의 불황에서 회복하는가
싶더니 환율불안에 남부대지진등 돌출 변수까지 겹쳐 여태껏 답보상태를
벗지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일본의 경기불안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본은 구미를 따라잡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캐치 업( catch-up )
신드롬"에 함몰돼 있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광범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라고 봅니다만.

<> 아오키교수 =일본경제의 과제는 거품경제로 인한 후유증, 특히 은행
들이 안고있는 불량채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행부문을 포함한 금융제도 개혁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나 경제계에선 기업 계열화구조와 연공서열제도 등
일본의 경제시스템이 구미와 다른 만큼 처방도 다르게 나와야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미국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제도적인 구조가 잘 작동해 왔다고
보고 계속 그 틀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지 않고 있다는
얘깁니다.

반면 일본도 이제는 선진국에 걸맞는 정상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요. 물론 일본의 제도적인 구조는 당연히 미국과 다릅니다.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획일적인 틀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각국의 역사적인
발전 단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일본이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제도적인 틀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 안교수 =엔화가 올 상반기중 한때 미달러당 70엔선으로까지 솟구치는
사상 최대의 강세를 보이더니 요즘들어서는 다시 1백엔선가까이까지
후퇴하고 있습니다.

과연 요즘의 엔화약세가 일시적 현상인지,일본의 경기부양을 우선
추진해야겠다는 미국의 의도에 따른 구조적 추세가 될 것인지,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 아오키교수 =요즘의 엔저는 일본경기 부양이 시급하다는 미.일.독등
3개국 통화당국의 판단이 일치됐고 그에 따라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지는등
어느 정도 전기를 맞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세 통화당국의 강력한 입장은 적어도 앞으로 4~5년간은 이어질것
같습니다. 미통화당국은 특히 일본 거품경제의 산물인 금융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실채권을 양산하는등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일본 금융제도가 그대로
붕괴되고 마는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시각에
대해 일부는 동의하고,일부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합니다.

<> 안교수 =그렇다면 일본 금융당국은 어떤처방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요.

<> 아오키교수 =현상을 근본부터 파헤쳐나가는 노력을 서둘러야 합니다.
우선 적자를 면치못하고 있는 은행들에 대해선 불량채권을 청산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일본의 몇몇 공공기금들은 몇해전 주택자금 대출을 맡는 대금전문
금융기관( Non-Bank =수신기능이 없이 여신만을 취급하는 비은행금융기관)
들을 계획적으로 설립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은행들 자신이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대금 금융기관은 거품경제시대때 고율 예금이자를 미끼로 농협등 규모가
작은 은행들의 예금을 예치하는등 손쉬운 방법으로 운영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굴린 자금들이 그만 거품이 걷히면서 부실덩어리로 변모하게
된 것이지요. 거품경제시대에 많은 돈을 끌어 모았던 금융기관들에도
책임이 있지만 통화당국도 기금을 설치해 도와줘야 합니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말입니다.

<> 안교수 =일본은 그동안 막대한 무역흑자를 쌓아올린 덕분에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출초로 야기된 국제적 무역불균형이 세계적인 경제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개선조짐은 보이지 않는것 같습니다.

예컨대 미.일간의 통상마찰 현안인 자동차부품 역조문제만 해도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포괄 협상타결"이란 미봉책으로 급한
불만 끄고 말았지요.

<> 아오키교수 =나는 전부터 미.일 무역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양국의
관계는 경제적으로 점차 부각되고 있는 아시아국가들,특히 중국과의
삼각관계구도 속에서 조명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미.중.일
3국경제는 상호 보완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일본은 기계공업이 발달해 각종 공작기계등을 생산할수 있는 능력이
풍부합니다. 반면 중국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어 기술도 필요하고
공작기계도 수입해야 합니다. 따라서 양국간의 경제적 접촉은 더욱
절실합니다.

이런 산업부문간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교역시스템은 일본과 미국간에도
똑같이 적용될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등 비교우위를 지닌
산업부문을 최대한 활용해 대일불균형을 해소해 나가야 할 겁니다.

<> 안교수 =일본이 만성적인 대외무역 흑자기조를 떨치기 위해선
특유의 기업간 계열화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지
오래입니다. 일본기업들이 이런 계열시스템을 교묘히 활용해 외국산
부품수입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아오키교수 =계열화문제가 꼭 일본에만 특별히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획일적으로 공과를 평가할 수도 없고요. 예컨대 미국의 컴퓨터회사들도
일본 자동차회사들처럼 계열화돼 있습니다.

미국은 계열 관계가 일시적인데 비해 일본에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말입니다.

<> 안교수 =일본경제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계열화와 함께 종신고용제를
거론합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계기로 종신고용제도
역시 근본적인 도전을 받고 있는것 같습니다.

근속연한에 구애받지 않는 능력급제도가 일본에서도 보편화될수 있는지가
관건이겠습니다만.

<> 아오키교수 =일본이 종신고용제도를 오랫동안 존속시켜온 것은 나름의
강점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기계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수 있었던건
종신고용시스템에 힘입은 측면이 많다는 것이지요.

기계와 설비는 신뢰할수 있고 결점이 없어야 하며 고품질이어야 하는데
이건 오랫동안 한 라인에서 숙련된 공장근로자들의 기능과 경륜이 얼마나
뒷받침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개성 창조성 독창성등이 요구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같은 산업
에서는 종신고용제가 오히려 역기능을 할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두가지
고용형태가 병존하는게 바람직합니다.

<> 안교수 =일본에서도 요즘 고용형태의 변화와 산업패턴의 변모에
부응해 기업 내부구조및 지배구조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일고 있는것 같습니다.

<> 아오키교수 =그렇습니다. 일본 통산성이 주축이 돼 순수 지주회사
제도를 부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게 단적인 예지요. 순수한
지주회사제도가 실시된다면 지금처럼 회사의 본부와 각종 부서가 단일
회사조직에 속하고 인사부가 인사관리를 전담하는데서 야기되는 경직성은
크게 줄어들 겁니다.

그에 따라 연공서열제도등 인사적체를 초래했던 관행들도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점에 있어선 한국의 대기업그룹들도 시사점을 얻어야
할 겁니다. 말하자면 회사의 본부는 진정한 본부로만 머물게끔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내각은 이런 순수 지주회사제도 부활이 옛날의 "자이바쓰
(재벌)"를 부활시키는 것이라는 대내외적 비난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해 일단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기우일 뿐입니다.

<> 안교수 =그러기 위해선 순수 지주회사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지게끔 전체 기업활동을 조감할수 있는 능력을 고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계열사간의 상호 지급보증이라든지 상호 출자등은 어떻게
해결될수 있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 아오키교수 =미국을 예로 들면 지주회사의 대규모 주식은 보험회사
신용기금 등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일본에서도 생명보험회사와 신용기금등이
주식을 소유할수 있겠지요. 결국 문제는 지주회사를 어떻게 관리 감독할
것인가에 모아집니다.

일본의 경우 기업법을 개정해 이사회 구성원의 3분의1 정도는 외부에서
영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수 있을 겁니다.

<> 안교수 =일본은 전후 생산자 중심형과 기업 보호형으로 경제가
발전돼온 바람에 소비자 복지가 뒷전에 밀려나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생산력과 공급력이 계속 보강돼 선진국에 올라섰으면서도 소비자복지
수준은 크게 뒤처져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왜곡된 구조에 대한
개선방안은 무엇일까요.

<> 아오키교수 =쉽지만은 않은 문제입니다. 일본이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근로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소비를 생각하기에 앞서 생산에만 매진해 왔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이제는 금융등 저생산성분야에서부터 보호벽을 허물고 고생산성의
이점을 받아 들이는등 소비자를 생각하는 방향으로의 체질개혁을 서둘러야
할 겁니다.

<> 안교수 =일본기업들이 동남아시아 전체로 진출하는 바람에 동남아시아가
마치 일본기업들의 거대한 계열사 처럼 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아오키교수 =일본기업들은 광범위하게 유대를 넓혀가야 합니다. 기존
부품업체들과의 단순한 하청관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 안교수 =그런 점은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일본에 대한 수직적 산업구조를 떨치지 못해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이젠 수평적인 분업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동남아국가들이나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집약산업 분야에서
일본과 협력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지요.

<> 아오키교수 =한.일간의 수평적 관계는 정부보다 민간차원에서부터
이뤄져나가야 합니다. 한국은 그럴 환경을 이미 부분적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더욱이 한국의 대기업들은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전략적인
결정을 신속히 내릴 수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전문경영인들이
최고경영진을 구성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합니다.

대신 일본인들은 연구개발과 디자인 제조업 등에서 경영진과 블루칼라
근로자들의 관계가 한국보다 더 긴밀합니다.

한국근로자들의 경우 작업장에서의 근면성은 일본에 뒤질게 없지만
노사협력 측면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조금만 더 분발한다면 일본의 산업계는 큰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정리=이성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