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한다.
1단계에서는 경제가 악화되고, 2단계에서는 금융기관들이 파산하며, 3단계
에서는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는 지난 4년간 "제로성장"을 지속했다.
지난해 회복기미를 보이던 경기는 올들어 다시 곤두박질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용조합 지방은행 등 중소금융기관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오쿠무라교수의 이론대로라면 일본금융은 지금 2단계 위기에 처해있는
셈이다.
문제는 3단계 진입 여부이다.
일본정부는 금융시스템 전체로 위기가 파급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신용불안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도쿄도가 코스모신조 영업정지명령을 내리기 직전인 7월31일부터 3일간
코스모의 창구에서는 예금의 20%가 넘는 9백9억엔이 빠져나갔다.
오사카부가 기즈신조의 영업을 정지시킨 8월30일에는 단 하루에 예금의
30%인 3천억엔이 인출됐다.
신용불안이 진정되려면 정부의 대책이 척척 맞아떨어져야 한다.
정부의 대처능력이 한계를 드러내면 건전한 금융기관들에서도 예금이 빠져
나가 금융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오쿠무라교수가 지적한 3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부실채권 처리는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당사자들끼리 이해가 엇갈려 책임을 떠넘기거나 불리한 대책을 거부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효고은행 처리도 그렇다.
대장성은 민간이 투자하는 "신은행"을 설립, 효고은행의 부실채권과 영업을
떠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주주인 스미토모은행 일본흥업은행 등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라며 신은행 출자를 거부하고 있다.
사실 코스모신조 기즈신조 효고은행의 정리는 비교적 간단한 문제이다.
난제는 대출금 11조엔 가운데 6조엔이 부실채권인 7개 주택금융전문회사
(주전)정리이다.
올 가을부터 본격화될 주택금융회사 정리는 부실채권 규모가 워낙 큰데다
정치권의 이해가 맛물려 있어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택금융회사들은 거품경제 말기에 농협 등 농림계 금융기관에서 거금을
빌려 부동산 분야에 대출한뒤 돈을 돌려받지 못해 망하게 됐다.
이들을 도산시켜 정리한다는 원칙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들의 빚을 떠안으려 하지 않아 문제이다.
주택금융회사 주주인 시중은행들은 부동산 대출자금을 대준 농림계 금융
기관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농림계는 주주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받아치고 있다.
주택금융회사 부실채권 처리에 공공자금을 도입하는 방안은 연립여당이
반대한다.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세금을 쏟아부을 경우엔 농림계 금융기관
경영진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해져 이른바 "농협표"를 잃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스스로 상각할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은행"에도 투자하고 주택금융회사 청산도 책임져야 한다면 이들
에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부실채권 정리에는 오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부실채권 정리가 늦어지면 일본경제는 장기간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세계2위의 경제대국에서 금융시스템이 송두리채 무너지기라도
하면 세계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난 뒤에는 일본 금융계는 현저히 달라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관치금융이 사라지고 경쟁원리가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금융기관들의 리스크관리가 강화되고 예금자들의 금융기관 선별이
신중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