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장=한국이 지난 50년간 수출지향적인 관리무역정책을 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정책이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에 많이 기여한 것도 사실이고요. 교수께서
이론적 단초를 제공한 전략적 무역정책론에 비추어 한국정부가 펴온 관리
무역정책은 고도 성장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효율성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겠는지 궁금하군요.

<>크루그먼교수=글쎄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고도 경제
성장을 달성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의 4개 신흥공업국들
중에서 뚜렷하게 수출지향적 정책을 추구한 나라는 한국 뿐이지 않습니까.

대만은 수출과 내수 양측면에 중립적인 정책을 취해왔고, 홍콩같은 경우는
아예 아무런 정책방향도 없는 자유방임주의 노선을 밟아온게 사실입니다.

<>이원장=보편적 타당성이야 어쨌건 한국에 관한한 관리무역이라는 전략적
무역정책이 고도 성장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WTO체제가 출범한 만큼 전략적 무역정책을 계속해서 실시하는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크루그먼교수=그렇습니다. WTO에서 각국의 수출보조금과 생산보조금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상업 목적의 기술개발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까지 규제하고 있지는
않은 만큼 이런 측면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민관이 힘을 합쳐 일본을 뛰어 넘는 수준의 평면
브라운관을 개발하는 것 등은 WTO에서도 허용될 것입니다.

<>이원장=WTO가 각국의 전략적 무역정책을 제한하고 있다지만 미국의 경우
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경우는 미국등으로부터의 국제적 압력과 WTO규범을 준수
하기 위해 전략적 관리무역정책에서 자유무역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미국은 한국등을 상대로 전략적 무역정책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한국에 통상압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반증입니다.
미국의 이같은 태도는 종종 국제적 비난이 대상이 돼온 "이중잣대(double
standard)"의 남용이라고 보지 않습니까.

<>크루그먼교수=동감입니다. 클린턴행정부의 대외무역정책은 철학적으로
일관성이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미국 스스로가 엄정한 자유무역을 실시하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들에 전략적 무역정책에서 탈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미국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입니다.

<>이원장=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최근 미의회의 다수당이 된 공화당에서
상무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상무부 폐지론이 미국 행정부가 취해온 무역정책노선과 어떤 관련이라고
있는 것인지...

<>크루그먼교수=글쎄요. 상무부가 별로 하는 일이 없다는 지적에는 동의
하지만 그렇다고 상무부를 아예 없애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무부가 하는 일의 반절가량은 통계처리 작업입니다. 때문에 이렇다하게
눈에 띌만한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상무부의 통계처리가 없다면
미국의 대내외 산업정책 수행이 아무래도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다만 상무부가 개별 기업과 산업에 대해선 서비스를 잘 수행하고 있지만
국가 이익에 기여하는게 적다는 지적은 상무부쪽에서도 곰곰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이원장=한국을 예로 들어본다면 산업.무역.경쟁 등 분야에서의 정책을
서로 다른 부처들이 나눠 맡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행정을 위해서는 이런 업무가 한 부처로 통합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미국 역시 법무부 상무부 등이 관련 업무를 나눠맡고 있는데...

<>크루그먼교수=행정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지적에는 동감입니다만
그렇다고 어느 한 부처가 모든 업무를 다 관장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각 부처가 공통의 행정목표를 갖고 상호간에 업무 협조를
잘 하고 있어 특별한 문제제기는 없는 상황입니다.

<>이원장=한국이 지난 50년간 이룩한 경제성장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고 싶군요.

교수께서는 최근 미포린 어페어즈지에 발표한 "아시아국가들의 성장신화
(The Myth of Asia''s Miracle)"란 논문에서 한국등 아시아국가들이 달성한
경제성장에 대해 "주로 생산요소의 증대에만 의존했을 뿐 투입요소의
생산성 향상은 거의 없었다"며 허구성이 많다는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단순한 생산요소 투입량의 증가에 의한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되며, 그런 점에서 구소련이 50~60년대에 빠른 성장을 보이다가
이후 정체에 빠진 것과 같은 궤적을 그릴 수도 있다고 해서 한국내에서도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만.

<>크루그먼교수=소련의 경제적 운명과 비교한게 반드시 적절했다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만 한국등 동아시아국가들은 소련의 예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등이 성취한 경제성장은 노동력 자본 등 기본 생산요소를 대량으로
투입해 그 반대급부로 얻어진 것일 뿐 기술적 효율성이나 생산성 자체가
획기적으로 향상돼 성취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게 저의 계량적 연구 결과
입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그 예외가 되는 나라는 일본 뿐입니다. 그런데
노동력 자본등의 투입단위를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일정한 수준에 오르고나면 더 이상의 비약적인 투입증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이 자랑하는 교육투자도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앨윈 영이라는 학자가 한국과 싱가포르 등 몇개 국가의 성장과정에 대해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방식으로 연구한 결과를 봐도 그렇고, 지난
92년에 세계은행(IBRD)이 발표한 "동아시아의 기적"이란 보고서에서도 이런
지적이 잘 반영돼 있습니다.

한국이 기술력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좀더 분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성장
둔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원장=국제 법인격을 갖춘 WTO체제는 자유무역 무차별주의 다자주의를
주된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EU(유럽연합) NAFTA(북미자유무역지대) 등 지역경제
블록이 심화되는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요.

이런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크루그먼교수=94년판 GATT(관세무역 일반협정) 24조를 보면 지역주의를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는만큼 어느 정도의 블록화현상은 현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최근 2년새 블록주의는 많이 둔화된 것 같습니다.
미국이 NAFTA를 체결했다지만 경제규모가 미국의 10분의 1도 안되는 멕시코
같은 나라와 경제국경을 없앴다고 해서 세계경제에 무슨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이원장=WTO체제가 출범했음에도 미국의 쌍무적인 무역공세는 별반 불식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미국은 최근의 WTO 금융.서비스 협상에서 탈퇴를 선언하면서까지
타깃이 되는 국가들에 대한 쌍무적 무역협상 압력을 강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크루그먼교수=미국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WTO에서 별로 신용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미국이 냉정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원장=그렇다면 앞으로의 한국의 미국 EU 일본 등 주요 무역대상국들과
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한국은 선진국들의 경제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앞두고
있는데 무역정책에 어떤 변화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크루그먼교수=한국과 주요 무역상대국들간의 관계에 대해선 낙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국제경제질서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선진국들간의 이른바
"북-북갈등"은 잦아드는 반면 구미선진국과 중국등 후발개도국들간의
"남.북마찰"이 다시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무역등에 대한 정부 개입을
줄이고 무역관련 제도와 관행을 명료하게 손질해야 할 것입니다.

< 정리=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