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영고"라는 제천의식에는 술이 사용됐다고 한다.

약 3,000년전의 일이다.

"후한서"의 "동이열전"에 나오는 이런 단편적인 내용이 우리나라의
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풍농을 빌었던 고대의 제천의식에 쓰였던 술은 피나 기장같은 잡곡으로
빚은 탁주였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신라때는 벌써 쌀로 빚은 술이
명물이었다.

삼국시대의 술빚는 기술은 유명해서 중국이나 일본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중국 강소성의 명주인 "곡아주"는 고구려의 술솜씨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태평어람"이란 책에 실려있다.

백제사람인 인번은 일본에 술빚는 방법을 가르쳐 지금도 그곳에서
주신으로 섬김을 받고 있다.

신라의 술은 그맛이 독특한 것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당대의 문사들이
"신라의 술 한잔에 녹을까 두렵다"고 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청주인 소주가 원에서 유입된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면 양조방법과
첨가물에 따라 수십가지의 술이 등장한다.

조선조의 양조법을 기록해 놓은 "주방문"을 보면 약50여종의 술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백자주 송주 이화주 국화주 창포주등이 특히 유명했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국을 대표할만한 술은 기층민인 농민이
즐겨마셨던 "막걸리"였다.

막걸리는 문헌상으로는 조선시대에 나온 "양주방"에 "혼돈주"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그 기원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알이 부셔져서 희뿌옇게 흐려서 "혼돈주""백주"라고도 불렸던
막걸리는 농민들의 기호품이었을 뿐만아니라 한끼의 요기가 되기도
했다.

농번기에 마을의 농부들이 모여 땀흘려 일하다가 새참때 마시는
한 사발의 막걸리는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에너지 공급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예나 지금이나 막걸리는 서민들이 즐겨마시는 술이다.

한국 소비자보호원이 전국 24개의 제조업체의 막걸리를 검사한
결과 15개제품에서 사카린 나트륨이 검출됐따고 한다.

사카린 나트륨은 사람이 섭취하면 출혈성 위염,신경장애 설사 복통등을
일으키는 독성이 있어 술원료로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다.

단맛을 내기 위해 그걸 넣어 막걸리를 만들었다니,소비자의 건강까지
도외시한 타락한 상혼에 분노를 금할수 없다.

제조업자에게는 응분의 처벌이 뛰따르겠지만 정부도 국민건강을
해치는 이런 범법행위를 근절하기위해서는 정기적인 검사제도를
마련해야 할것 같다.

막걸리는 우리술 가운데 명주에 끼이는 술은 아니다.

그러나 "막걸리 거르려다 지게미도 못거른다"는 등의 막걸리와 관련된
숱한 속담이 전해오듯 한국인의 애환이 담겨있는 향수어린 술이다.

양조업자들이 그런 긍지를 가지고 막걸리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