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중인 김영삼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밝힌 과학기술 선진국진입을
위한 청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는 문득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방향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성을 느낀다.

아무리 청사진이 화려하다 해도 실천가능한 정책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으면 말잔치로 끝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산업화과정에 있었던 지난 70~80년대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은
주로 그때그때 필요한 단편적인 산업기술개발에 중점이 두어졌었다.

그랬던 것이 92년 범부처적 국가연구개발사업인 "G7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계획이 발표됐다.

첨단기술과 원천기술에 중점을 두어 21세기에는 세계 7대 기술선진국으로
비약한다는 내용이다.

이 계획은 그 다음해 현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디엄테크(중간기술)와
생산기술에 중점을 둔다는 내용으로 변경됐다.

먼 훗날보다는 당장 기업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극히 실리적인 발상에서였다.

그로부터 불과 2년,이번에는 김대통령의 발표로 정책목표의 큰 뼈대가
또다시 바뀌게 됐다.

21세기에 대비해 기초과학과 첨단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겠다는 내용으로
보아 G7 프로젝트 본래정신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김대통령이 밝힌 핵융합기술을 비롯한 기초과학의 획기적 진흥,첨단기술
확보,과학기술인재 양성등 3대 과제는 다분히 선언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본방향은 시대적 요구를 적절히 반영했다고 평가할수 있다.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려면 기초기술의 뒷받침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미디엄테크도,연계기술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간 생산을 위한 산업기술에만 매달려온 우리의 경우 이대로는
과학기술의 급성장은 기대할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위 "S커브"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도약하려면 기초기술이 필요하다.

때문에 김대통령이 무엇보다도 기초과학진흥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한정된 과학기술예산을 국민의 삶이나 산업생산에 직결되지 않는 기초
연구쪽에만 편중지원할 경우 우리 산업계가 당장 필요로 하는 상용기술
개발은 그만큼 지장을 받을수 밖에 없다.

기술투자정책이 어려운 것은 미래의 기술과 당장 필요한 기술에 대한
투자를 균형있게 조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핵융합연구에만도 2001년까지 1,200억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하니 자칫
말잔치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은 혁명적 정책이나 깜짝쇼 같은 정책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학기술 정책담당자들이 정치 사회개혁의 물결에 들떠 과학기술정책에서도
뭔가 날마다 새롭고 혁명적인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긴다면
국가의 장래를 위해 그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정권은 물론이고 장관이 바뀔때마다 과학기술정책의 핵심테마가
조령모개식으로 너무 자주 바뀌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