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봄이었다.

나는 미국에 있는 한대학 아파트에 머물고 있었다.

대학구내에서 공사하는 현장을 지나다가 한 벽돌공 아저씨에게 우리나라
기술자들 같으면 2,3일이면 다 끝낼 공사를 열흘이 넘었는데도 아직 쌓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벽돌공은 이상하다는 듯이 "이 건물은 120년 동안은 사용할 집인데
벽돌벽의 강도를 위해서는 이이상 빨리 쌓으면 안되기로 되어 있다.

벽돌을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쓸집을 짓는 것이 중하지 않느냐"고 반문
했다.

나는 당시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슬라브천정이나 벽이 무너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는 매일같이 들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삼풍백화점의 붕괴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참사를 빚기에 이른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부끄럽고 창피해서 외국에 나갈수 없는 경우를 두번
맞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그 한번은 신 군부가 쿠테타를 일으켰을 때였고 다른 한번은 삼풍백화점의
붕괴 사건이다.

김대통령이 이번 미국 방문중 그 부끄러움때문에 어떻게 처신할지를 생각
하면 답답한 심정을 누를 바가 없다.

어쩌다가 두차례식이나 쿠테타를 겪어야 했고 대구 가스폭발사고가
잊혀지기도 전에 백화점이 무너질수 있었는가.

외국인들이나 외국 친구들을 대하면 할말이 없어지고 만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돈만 알고 기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업가들이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나에게 수입만 생기면 감독과 지도를 게을리하고 눈감아 주는 공무원들이
지금은 없다고 장담할수 있는가.

당장 오늘만 눈가림을 하면 되고 10년 앞을 생각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이
어디에나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건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집을 짓는 기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집을 잇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건설하고 있지 않은가.

한때는 정치지도층에서 언제까지 교량건설을 완료하라고 지시해 부실공사를
재촉하지 않았는가.

새마을 운동에 필요하다고 시멘트수출을 막아 국가적으로 손실을 준것도
정부였고, 2백만호의 집을 단기간 안에 완성시키라고 해 부실공사를 자초한
것 역시 정부였다.

주택공급의 무질서를 만든 것도 일부 지도자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정황들을 열거해 놓고 보면 삼풍사건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내 책임은 아니라고 말할수 있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계속적인 비극이 벌어졌으니까 이제는 안심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며 공직자들의 자각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는 실정이 안니가.

그렇다면 여기에 우리 모두가 책임저야 할 악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창피스럽지만 그 대답을 찾아 보아야 하겠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무지가 죄다"이라는 대답이다.

여기에는 직책의 상하가 없다.

벽돌공도 어떻게 무슨 집을 짓는지 모르면서 돈받기 위해 일을 한다.

대통령도 짧은 기간에 2백만호를 짓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몰랐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무지가 사회 모든 면에 도사리고 있다.

민주주의를 모른면서 민주주의를 상품화하는 정치인들, 돈만 있으면 교육
개혁이 되는 줄 아는 개혁 입안자들, 안전을 모르는 가스기술자들, 하수도
의 기능도 모르면서 땅을 파는 사람들..

"무지의 죄"를 이 이상 저질러서는 안되겠다.

겸손하게 배우고 알려주며 성실하게 정성껏 살면서 일하는 인간 보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