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이라는 이름속에 담겨 있는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본인들이 그 속마음을 보여주지않은 이상 그 추구하던 바가 무엇인지
우리로서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삼풍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따라서 최소한
천.지.인이라는 삼각조화속의 균형잡힌 풍요는 아니었을 것이라는게
우리네 짐작이다.

가치혼돈,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 종착역없이 달리는 기차속의 군상
등 요즈음 우리들 사는 모습을 그리는 단어들은 한없이 많다.

홍승직(66). 우리나라 사회학을 이끌어온 원로학자이자
아세아사회과학연구원 이사장인 그는 삼풍이 무너져 내린 것을 두고
"있을수 있는일"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님같은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찌보면 홍교수야말로 요즈음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병리를 제대로
진단할수 있는 진정한 ''사회의사''인지 모른다.

일제치하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6.25를 만나 평북 운산 최전선까지
진격해 올라가 봤다는 홍이사장은 전쟁이 끝나자 미국 워싱턴대에 유학,
사회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30년이 넘게 우리나라 사회학 발전에
기여해왔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도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그의 학문적 공헌이 인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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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사회가 여러가지로 중증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 홍이사장 =잇단 대형사고와 각종범죄,특히 최근 일어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기상천외한 것도 아니고 또 우리만 겪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 짧은 기간내에 발생하니까 마치 우리만의 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유형의 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TV발달로 세계의 사건들이 발생과 동시에 지구촌 구석구석에
시청각으로 전해짐에 따라 그 전달강도나 밀도가 높을수 밖에 없는
것도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실제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요인일지 모릅니다.

-일본과 미국에서의 재해는 지진등의 자연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우리나라의 재해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빚어진 인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것 아닐까요.

<> 홍이사장 =물론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허리가 휘는 빈곤에서부터 출발하여 남들이 3백년 혹은
4백년 걸려 이룩한 것을 30년,40년에 해치우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런 압축경험내지는 압축성장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진단해야 할
것입니다.

현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적 한탄과 비판적 자세보다는
이런 문제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해결하느냐 하는 긍정적 자세일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것은 아니지만 뇌물 부정 개인이기 집단이기등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 홍이사장 =정신적 피폐야말로 콘크리트가 부식되는 것보다 더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데 공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분명 우리사회는 도덕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된것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집단적 강박관념
내지는 최면에 걸렸던 결과라고 볼수도 있을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경제적 안주를 향해 달리는 버스에 올라타기에 급급한
나머지 "무엇때문에 사느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해 깊은
사색을 해볼 기회를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고 유추해볼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는 자식이 부모를,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상상도
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회병리의 하나로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간의 갈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데.

<> 홍이사장 =세대간의 갈등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존재해왔습니다.

기성세대는 과거지향적인데 반해 젊은이들은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대간의 차이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봐야합니다.

내가 직접 확인한것은 아니지만 고대 이집트사원의 고문중에 "요즘
애들은 못말려"라는 뜻의 글귀들이 발견된다고 하지않습니까.

그렇다고해서 내가 요즈음 젊은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모든것에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빨리 변한다는
느낌을 나 스스로도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홍이사장 =사회 발전이 단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때문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가치관 예의범절 사고방식 생활방식에 현저한 단층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우리세대는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 효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부모의 묘를 찾아 정기적으로 사초를
하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야 말로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많아진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서너 평씩의 묘를 가지려
한다면 멀지않아 전 국토가 묘지로 변할 것입니다.

불을 보듯 뻔한 귀결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가르침 그대로 성묘의
중요성과 의미를 설명해서 제대로 설득이 되겠는가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대간의 단층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특히 도시화 산업화 민주화 이데올로기적 분화체제의 몰락 전자시대의
도래등 최근 10~20여년 사이에 전개된 변화는 세대간의 단층을 증폭시켜
왔다고 봅니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는 자세가 기성세대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물을 상황논리적으로만 보는 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 홍이사장 =물론 외부환경변화에 대응해 이를 극복해보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의 포기는 스스로의 존엄성에 대한 포기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되지도 않는 논리와 가치체계를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남녀문제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관념도 크게 변했습니다. 이에따라
가족의 생활방식도 크게 바뀌었고 이혼율도 늘고 있습니다.

<> 홍이사장 =우리가 지켜온 과거의 가치체계중 가장 문제를 안고
있는 것들중 하나가 바로 남녀문제입니다.

남존여비라는 터무니 없는 사고체계는 참을수 없는 문제와 갈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남녀평등사상이 어떻게 정착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가족생활과 행복추구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남녀에 대한 개념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가치관 형성에 대학생활은 매우 중요한 기간이라고 생각됩니다.
30년 넘게 제자들을 가르치신 경험에 비추어 대학교육의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습니까.

<> 홍이사장 =우리나라 교육은 홍익인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육이 전공필수에 묶여 있어 자유의사에 의한 교양과목선택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대학교육 본연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전공필수를 대폭 줄이고 교양선택을
학생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마음대로 선택할수 있는 쪽으로 바꿔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세아사회과학연구원 이사장으로 계신데 이연구원이 관심을 두고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 홍이사장 =우리는 일제 36년을 보냈지만 우리중에 일본 역사를
제대로 가르칠수 있는 교수가 몇명이나 될까 의문을 갖다보면 그
실상에 놀라지 않을수 없을겁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이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세아사회과학연구원의 첫번째 목적은 우리의 아시아 이웃을
더 잘 알자는데 있습니다.

더욱이 아시아는 세계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 이웃간의 경제번영 평화등 공통가치를 추구하기위한
협조체제구축등이 우리 연구원의 관심사항입니다.

-최근 북한에 대한 쌀지원 문제는 여러가지로 화젯거리였습니다.
아시아의 공동번영과 평화라는 주제와 연관지어 쌀문제를 평가한다면.

<> 홍이사장 =없는자를 돕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체면 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잡음은 있었지만 긍정적인 결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사람들간에도 주는자와 받는자의 관계는 미묘합니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주려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적게 받고도 고마워하게 만들수 있지만 많이
주고도 뺨을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리는 항상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데 있습니다.

[대담=양봉진증권부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