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민족통일연구원 정책연구실장>

김일성이 사망한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김정일의 권력승계지연,북하체제의 변화 가능성등 북한정세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김정일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의
공식적 승계는 시작문일뿐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문제는 김정일의 당총비서나 국가주석 취임시기가 아니라 그의 통치아래서
북한체제가 어떠한 정책노선을 채택하는가이다.

김정일의 정책노선은 바로 북한체제의 변화를 가늠할수 있는 척도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지난 1년동안의 북한의 동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마디로 북한주민의 사회.심리적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단속과 경제
희생을 위한 개방의 확대필요성간의 구조적 딜레마를 헤쳐 나가는 기간
이었다.

체제유지를 위한 대내적 수단으로써 북한은 "유훈통치"라는 명분하에
김일성의 통치노선과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해오고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카리스마 전이와 각종의 상징조작, 군부에 대한 배려,
"인덕정치"와 "광폭정치"라는 주민포용정책, 식량및 소비재 생산독려등을
통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시한 것은 핵문제를 매개로
형성된 대미관계의 개선이었다.

북한은 미국과의 정치.경제적 관계개선을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난국을
타개할수 있는 첩경으로 인식하고 모든 노력을 집중해 왔다.

대미관계 개선은 김정일의 지도력을 부각시키고 총체적인 체제안정의
여건을 조성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김정일정권이 선택할수 있는 정책노선은 경제적 위기의 극복,국제적
고립의 탈피,체제의 안정화 도모등을 위해 필요한 개발노선과 북한주민들의
사상적 해이를 억제하기 위한 기존의 폐쇄적인 주체사상 노선의 복합적인
산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 5년동안 계속된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한국과 일본에 대한
쌀요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식량사정은 김정일체제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대외개방노선을 추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김정일체제의 안정적 출범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시행하고
이를 뒷받쳐주기 위한 경제적 외교적 업적을 쌓는데 주력할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북한은 그동안의 대미 협상과정에서 구사한 극단전술의
한계를 인식하고 향후 대미관계 개선에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대일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용주의노선의 확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대외개방이
가져올 부작용을 억제하기 위해 북한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 강화를 동반할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김정일체제의 대외개방노선의 확대가 체제개혁을 초래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남북관계는 어떠할 것인가.

북한은 지난 1년동안 김일성시대에 정립된 대남및 통일정책을 계승할 것을
반복적으로 천명하고 있는데 그 기본틀은 "통일3원칙"과 "조국통일 10강령"
의 견지이다.

따라서 북한은 경수로지원 합의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의 공식적인 재개및
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것이다.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이 어느 수준까지 자신의 계산대로 진척되는한 남북
대화는 가급적 회피하면서 대화단절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는 전략을 지속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컨대 남북관계 차원에서 북한은 체제공존을 목표로 김정일정권의 안정적
유지와 한국의 대북 영향력 배제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분야에서는 체제안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한국
기업의 대북진출을 경쟁적으로 유도하면서 직교역으로의 확대를 도모할 것
으로 보인다.

남북경협의 확대는 미국등 서방기업의 북한진출을 자극하는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정.경분리정책을 잠정적으로 추진, 정치적 차원에서
김정일정권의 안정을 위해 공개적으로는 대남 적대정책을 고수할 것이나
경제적으로는 대남 유화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관계는 경제적 차원에서는 진척될 것이나 정치적 차원에서는 상당
기간동안 답보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