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자유화의 문제를 논의할 때 흔히 남미와 아시아가 곧잘 비교되곤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은 점진적인 자본자유화를
추진한 반면 남미의 국가들은 급격한 자본자유화를 추진했다.
결과론일지는 모르지만 남미의 자본자유화는 대체로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미국가들의 자본자유화는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시행되었다.
하나는 금리의 상한선을 철폐한 것이고,다른하나는 자본의 대외거래에
대한 제한을 없앤 것이었다.
그러나 국내의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빠르게 추진된 자본자유화는
대체로 국내의 살인적 인플레를 피해 자본을 해외로 유출시키거나
엄청나게 높아진 이자를 취하기 위해 외국으로 부터 대규모의 자본
유입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느 경우이든 금융의 측면에서는 커다란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칠레의 경우 1976년에 금리에 대한 상한선이 폐지되었다.
당시 칠레의 물가는 제자리수의 상승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축소함으로써 물가승승율과 실질이자율이 하락했지만
80년의 실질이자율은 연12%로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그 결과 외국자본이 몰려들었고,이 와중에서 부실채권이 급증,마침내
82년에 자본시장이 무너졌고,정부에서 대부분의 부실채권을 떠안음으로써
민간부문의 금융문제가 국가적 외채문제로 전이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정부의 소홀한 감독하에서 행해진 자본자유화가 어떻게 실패하는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자본자유화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물가상승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환율 또한 고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이자율이 오히려 마이너스 수준을 보였고 결국
대규모의 자본유출을 겪지않을 수 없었다.
이 역시 적절치 않은 경제상황에서 자본자유화를 추진할 경우 패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 예라할 수 있다.
한 경제학자는 이같은 상황을 "자금압박 대신 자본시장의 붕괴"
(Goodbyc ginancial repression, Hello financial crash)라고 표현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폭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