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도덕성회복 국민운동본부 총재(70)만큼 다양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마 드물 것이다.

중앙국제법률특허사무소장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중앙지도위원
세계마약퇴치협회장 행정갱생보호회이사장 아.태변호사회장
야생조류협회장그가 현재 맡고있는 직책들이다.

국제법관련 변호사로 국내외에 명망이 높은 이총재는 지난 92년 대선때
대한정의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해 우리에게 더욱낫이 익다.

평생을 법조계에 몸담아온 이총재는 한국신특허법의 요해 북구의 낙원
한국법제의 실정 각국법률제도비교론등 명저와 법조계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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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건강해 보이십니다. 건강관리의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병호총재=건강체질을 타고났나 봅니다. 지금까지 피곤하다던지 몸이
불편해서 하고자 한일들을 못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남보다 특별히 건강하다는소리를 듣는 것은 어렸을때 많이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충북진천)에서 국민학교를 다닐때는
6km길을 매일 걸어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중학교(대동상업)를다닐때도 버스값을 아끼기 위해 돈암동에서
종로 계동에 있는 학교까지 줄곧 걸어다녔지요.

그래서 지금도 하체가 젊은사람 못지않게 튼튼합니다. 학창시절에는
달리기도 남 못지않게 했습니다. 마라톤이 제 특기였어요. 요증은 시간이
없어 자주 산엘가지 못합니다마는 등산도 좋아합니다.

많이 걷고 적게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에 열중하다보니 자연히 건강이
유지되더군요.

-요즘 주로 하시는 일은.

<>이총재=변호사 사무실(중앙 국제법률 특허사무소)일은 직원들에게
맏겨두고 아.태변호사협회일과 실종되어가고있는 도덕성을 되찾기위한
국민운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태변호사협회는 내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애착이 큼니다.

-지금 맡고계신 도덕성회복 국민운동본부는 언제 설립하셨습니까.

<>이총재 =도덕의 쇠퇴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어가고있는 꼴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을 수 없어 지난 89년 사비를 털어 만들었습니다.

전국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관공서 기업체등을 찾아다니며 "도덕과
법을 지키는 국민이 되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며칠전 충남대학과
강원도에 있는 모기업체의 요청으로 강연을 하고왔더니 이렇게 목이
쉬었습니다.

강연을 다니다보면 도덕을 추앙하고 이를 지키기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됨니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학생이 선생을 폭행하는등 도덕성의 위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던
우리나라가 어떻게하여 이지경에까지 이러렀다고 보십니까.

<>이총재 =한마디로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정경유착이
금전만능주의를 몰고왔고 사회지도층들이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으니
법이 문란해 질수 밖에 없지요.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돈을 벌자는 풍조가 만연되면서 갖가지 범죄가판을
쳐도 이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것이 우리의 현실아닙니까. 지도층들이
법을 안지키는데 누가 법을 따르겠어요.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라는 위험한 생각들이 국민들 사이에서
만연되고 있습니다. 이말은 "손해를 보지않으려면 법을 지키지 말아야
된다"는 뜻 아닙니까.

얼마전 어느국회의원이 구속 되면서 "왜 나만 그랬느냐"고 항의하는
것을 봤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우리가 당면하고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강다리만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륜관계가 무너져서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믿음이 무너지고 법과 도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정의가 무너지고 국제경쟁력도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지고 학교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땅에 떨어지고 가정교육은 실종된지 오래이지요.

-치유방법은 없겠습니까.

<>이총재=지도층들이 각성해야합니다.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가진 양심적인 정치가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세도 다스리기에 달렸다"는 옛말이 있지않습니까. 이런 지도자들을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모두
노력해야합니다.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같은 위로부터의 개혁은 별다른 실효를 걷우지 못하고 시지부시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할 때입니다.

온 국민이 도덕으로 재무장을 하여 자질이 없는 정치가나 기업인들이
발을 부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도덕성 회복"이란 바로
이런일을 하자는 운동이지요.

-아.태변호사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이총재=지난 84년 서울지방 변호사회장으로 있을때 "법을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는 취지로 아시아지역 국가 변호사 모임을 주선한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20여개국에서 몇십명이 모였으나 이모임이 발전하여 지금은
78개국에 3천여명의 회원을 두고있는 국제기구로 발돋음 했습니다.

회원 대부분이 국제관련업무를 전담하고있는 변호사들이지요. 이 기구의
회장을 10여년간맡아오다 창설자라고 하여 종신회장으로 추대됐습니다.

집행부 회장은 따로 있습니다. 임기는 2년이지요. 이모임을 통해
세계평화에 많이 기여했다고 해서 지난 91년 아인슈타인재단으로부터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이상을 받은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지난 대선때는 대한정의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셨었는데 오는
대선때도 입후보할 생각이신지.

<>이총재=안나갑니다. 그때는 나라가 타락과 부패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격분해서 뛰쳐나왔습니다. 도덕의 타락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외국에서는 법과 도덕을 잘지키는데 우리는 왜 이러는가 하는 생각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정의가 구현되고 도덕성이 회복됐다고 보십니까.

<>이총재 =아니지요. 정치를 통해 도덕성을 되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도덕성회복운동이 바로 이같이 아래로부터 추진되고있는
개혁운동이지요.

-대단히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마는 지난 대선때 당선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총재 =정의와 도덕을 깨우치게 하려고 출마했을뿐 당선가능성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않았습니다. 동조해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낙선을 하고도 가슴 뿌듯했습니다.

-미국대통령 정책자문위원도 맡은 적이 있으시지요.

<>이총재=아.태변호사회장자격으로 부시대통령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준 적이 있습니다. 중국 천안문 사건때 구속된 학생들과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방여지교수의 사면을 아.태변호사회가 중국정부에 공식요청했지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사담 후세인을 전범자로 규정하고
국제재판소에 제소한 적도 있습니다. 부시대통령의 정책자문위원으로
대통령을 도와준 일들이지요.

-법조계에서 중국통으로 소문나있는데.

<>이총재=세계변호사대회를 중국에서 7번이나 열정도로 유대관계가
깊습니다. 흑룡강대학의 이병후라는교수는 "이병호와 중국"(이병호여중국)
이라는 책을 펴냈을 정도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많습니다.
교석 오학겸 국무원부총리 습중훈최고인민대회 부위원장 진탁 중국변호사
회장등과 친교를 나누고있습니다.

-외국어는 몇개국어나 하십니까.

<>이총재=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는 별어려움없이 할수 있읍니다.
소련말은 띠엄띠엄하는 정도지요. 중국에서는 중국말(북경표준어)로
강연을 합니다.

요즘 노신의 광인일기와 아Q정전을 원문으로 읽고있습니다. 중국사람들과
중국어로 역사나 문학 법률등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렇게 좋아들 합니다.
아마 친근감을 느끼게 되나봅니다.

-평생을 법조계에 몸담아 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으실 텐데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면.

<>이총재=국제적인 변호사회를 창설하고 이공로로 평화상을 받았던
일이지요. 또한 몇년전 삼중스님의 부탁으로 최재만이라는 사형수에
대한 사건을 수임받았는데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재심청구로
무기로 감형시켜준 일도 기억에 남는 일중 하나입니다. 물론 무료로 변론을
맡아했습니다.

-가슴아팠던 일들도 있으시겠지요.

<>이총재=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고 방황할때입니다.

-한창 말썽이 됐던 현행 변호사 수임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총재=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건하나에 수임료의 상한선이
5백만원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성공사례금까지 합하면 1천만원이 되는
셈이지요.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거치는 과정에서 수임료는 3천만원으로
6배나 늘어나게 됨니다. 그런대도 수임료를 올리려고하니 국민들이
좋아하겠습니까.

-돈이 많은 것으로 소문나 있던데 언제 그렇게 벌었습니까.

<>이총재=변호사개업으로 왠만큼 돈을 벌었습니다. 일찍이 남이 생각지도
않던국제법 상표법 특허법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이부문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덕이지요. 세계 큰회사들이 모두 우리회사 고객들입니다.
직원3-4명으로 시작한 사무실이 지금은 2백50명규모로 커졌습니다.

내 재산이 수천억원은 될 것이라고 수근대는 소리도 들었습니다마는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모두 써버렸기때문이지요.

아.태변호사협회나 도덕성회복 국민운동본부 수형자를 돕는 행정
(이총재의 호)갱생보호회가 모두 내 사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많이
벌어서 모두 사회에 환원한 셈이지요.

-후진들에게 당부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총재=정의를 지키는데 앞장서는 법조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못받는 법조계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관예우""유전무죄"라는 말들이 모두 우리법조계의 부패를 빗댄 말들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을 들을때면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써 얼굴이 화끈해
짐니다. 공과 사를 구별할 줄아는 법조인이 되어달라고 다시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담=문중식부국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