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부터 24일간 줄다리기를 계속해 온 미국과 북한간의
콸라룸푸르회담이 13일 타결됐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결실은 우리정부가 줄곧 강조해온 2가지 원칙이
관철됐다는 점이다.

그중 한국형 경수로는 이번 합의문에 직접 명기되지는 않았다.

대신 기술적 용어를 빌어 한국형을 표현했다.

합의문에는 "현재 생산중인 두개의 냉각재 유로를 가진 1천MW 경수로2기"
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곧 한국형 표준원자로인 울진 3.4호기를 뜻한다는 게 외무부 관계자
의 설명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이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원자로는 울진 3.4호기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사실상 북한이 한국형을 수용했다고 볼수 있다.

한국의 중심적 역할도 합의문엔 표기가 안됐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한국의 역할을 보장했고 13일 긴급
개최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집행이사회도 "자격있는 한국기업(한전)
이 설계 제작 시공 사업관리등 경수로사업 전반을 수행한다"고 못박았다.

따라서 이문제도 한국정부 입장이 관철됨 셈이다.

북한이 들고나온 추가 부대시설 요구는 부지조사와 부지준비 경비만
포함됐고 나머지는 한반도 KEDO와의 협상에서 논의토록 했다.

이밖에 이번 회담의 성과로 들수 있는 것은 북한과의 회담창구 전환.

지금까지 미국만을 상대해 온 북한이지만 앞으로는 경수로문제에 관한한
KEDO와 직접협상을 해야한다.

따라서 경수로 사업과 관련된 북미양자협의는 이번 콸라룸푸르 회담이
마지막이다.

이번 회담타결은 대북경수로 사업의 국면전환을 의미한다.

2천3년까지 약 40억달러(약 3조3천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경수로
지원사업은 이제 공급주체인 KEDO와 북한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세부사항을
협의하는 일만 남았다.

산적했던 정치적 쟁점 대신 경제논리와 상업계약 차원의 협의만이 남은
셈이다.

이제까지 북한은 지난 92년의 핵위협이후 한국과 미국을 대상으로 일관
되게 정치적 공세를 펴왔다.

미군철수, 평화협정 전환, 경제재제완화 등 핵을 무기삼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철저히 한국을 배제시키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 댓가로 나온 것이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카드였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시작한 지난 93년 이후 최근까지 "한국형
은 유령"이라는 등의 구실로 경수로지원사업에서의 한국역할을 철저히 무시
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북한의 정치공세는 이제 더이상 효용이 없어지게 됐다.

한미일 3국이 중심이 된 KEDO가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게 됨에따라 한국
배제는 더이상 시도할 수 없게 됐다.

또 툭하면 써먹던 핵동결 해제위협도 미국이 연료봉 보관작업을 시작하게
됨에 따라 위협의 근거가 없어지게 됐다.

그렇다고 북한이 이번 회담의 패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북한은 각종 실리를 챙겼다.

우선 경수로2기 제공및 부지정리 비용을 한미일 3국이 지원해 준다.

핵연료봉도 미국이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중유도 오는 10월이전에 추가로
지원된다.

그뿐 아니다.

빠르면 하반기중 미국의 2차 경제재제완화 조치도 있을 예정이다.

그야말로 가장 큰 선물보따리를 챙긴 나라가 북한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도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긴 하나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뒀다.

한국은 실질적으로 "한국형 표준경수로(울진3.4호기)"를 관철, 남북관계에
확기적 개선을 가져올 발판을 마련했다.

게다가 경수로 수출국이라는 경제적 선전효과도 누렸다.

물론 가장 큰 성과는 한반도 긴장완화다.

이같은 이유로 한국정부는 이번 회담에 만족하고 있다.

외무부는 13일 오후 성명을 통해 "정부는 이번 합의가 향후 경수로사업
진행을 위한 기본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보고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공노명외무장관은 이번 미북합의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해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를 놓지지 않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미국은 핵확산 방지라는 최대의 현안을 막는데 성공했고 미국기업이
경수로사업의 일정지분을 가질수 있게 됐다.

일본 역시 대북수교협상 재개와 함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할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맞았다고 볼수 있다.

< 김정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