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도전과 시련에 맞서 정면승부를 하는
정치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총리직에 오르자 이제까지의 서방편중 외교정책을 수정하여 동남아
국가연합(아세안)을 중심으로 지역협력을 강화하고 이슬람 제국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였다.

자주독립 외교를 표방하여 비동맹 중립노선을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과거 10년간(1948~57)에 걸친 반공항쟁의 경험과 베트남 공산화
를 거울삼아 국방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 베트남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마하티르 총리는 급속한 경제발전의 경험을 가진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증진에 역점을 두고 "동방정책(동방정책)"을 적극 추진해 왔다.

대내적으로 "청렴하고 능률적인 신뢰받는 정부의 구현"이라는 기치아래
경제발전과 국민화합정책을 통해 "공직자의 솔선수범운동( Leadership by
Example )"을 전개해온 마하티르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의 참다운 원동력이 되는 "자신의 일(직업)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 work ethics )"를 강조해왔다.

1984년 4월 마하티르는 연립여당내의 경쟁자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았다.

임기 3년의 신임 총재 선출을 위한 국민전선(NF)의 중추세력인 통일
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제38차 당대회에서 그는 당시 통상장관이었던
라잘레이에게 총 1,479명의 대의원중 761표를 얻어 40표 차이로 신승
함으로써 정치적 장래를 어둡게 했었다.

이와 관련해 당대회 무효소송이 제기되었고, 이에 사실상 패한 마하티르
는 자신이 이끄는 UMNO를 신(신)UMNO로 신규등록해야 했으며 라잘레이와
전 부총리 무사 히탐등에 동조하는 10여명의 현역의원이 구(구)UMNO에
잔류함으로써 40년 역사를 가진 말레이계 최대 정당이 분열되었다.

이러한 혼란을 겪고 치러진 90년 10월의 조기 총선거에서 마하티르는
자신을 강력하고 새로운 이미지의 지도자로 부각시켰다.

총선결과 일반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 마하티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마하티르의 NF는 총 180석중 127석(86년 총선에서는 137석)을 얻어 재차
3분의2선을 확보하였고 라잘레이의 스망앗 46(S-46)은 8석을 얻는데
그쳤으며 NF에서 탈퇴한 사바통일당(PBS)은 사바주를 석권하여 14석을 획득
하였다.

한편 중국계 야당인 민주행동당(DAP)은 20석으로 4석이 줄어든 반면
말레이계 야당인 이슬람당(PAS)은 7석을 얻어 지난번 총선에서의 참패(1석)
를 다소 만회하였다.

이로써 라잘레이의 강력한 야당연합체 구성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다소 급진적이고 무리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마하티르 총리는 이제 자신의
정책수행에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4월25일에 실시된 조기 총선거는 집권 14년째를 맞는 마하티르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되었다.

그는 비전 2020년으로 명명한 조국의 장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국민들
에게 제시함으로써 눈에 띄게 달라진 정치안정을 구가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88년이후 계속해 연평균 8%를 웃도는 착실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

10일간에 걸친 4.25총선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중 마하티르가 강조해온
정치안정. 국민(다종족)화합및 번영에 대한 대 국민 홍보가 주효하여 연립
여당은 57년 독립이래 최고 득표율인 84%를 얻어 총 192석중 162석을 차지
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라잘레이의 아성인 클란탄도 무너지고 PBS와 PAS, 그리고 DAP도 마하티르
에게 많은 의석을 내주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등 이질적인
종족문화를 바탕으로 한 이들의 다양한 이해를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을
통해 효과적으로 수렴함으로써 새로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마하티르 정부의 과감한 대내외적 시도는 여러 종족간의 갈등과 결부된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강력한 민족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마하티르총리의 지도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콸라룸푸르정부의 제반 정책들이 이질적인 민족의
다양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수렴하여 "말레이계를 위한 말레이시아"가 아닌
진정으로 "말레이시아인을 위한 말레이시아"를 위한 민족통합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