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국제연합(UN)과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

그 같은 관계를 상징하는 사례가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되지 못했으면서도
한 동안 "유엔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세계 유일의 국가였다는 사실에서
알수 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유엔은 긴밀한 관계에 있어던 것이다.

해방직후인 47년9월 미국은 "한국독립에 관한 문제"를 유엔 총횡에 상정
했다.

총회 제1위원회는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을 파견하여 그 관리하에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제안을 했고 11월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그러나 북한 군정당국이 이 위원단의 입북을 거절하여 유엔 소총회는 우선
"선거가 가능한 남한지역만의 선거관리를 결의"했고 48년 5월10일 총선거가
실시되어 8월15일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하게 된 것이다.

또 50년 6월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27일 안전보장이사회는 회원국들
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원조를 권고했고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하여
미군과의 통합군을 조직할 것을 요청했다.

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한 것이다.

53년 휴전협정이 채결되면서 "한국문제"는 일단 제네바정치회담으로 이전
되었으나 회담이 실패로 끝나자 다시 유엔으로 넘어갔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91년9월18일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엔은 제2차세계대전중인 41년 "대서양헌장"에서 그 싹이 보이기 시작
했다.

44년 덤바튼오크스회담에서 미.영.소.중등 4대 강국이 창설에 합의하여
"국제연합헌장"의 기초작업에 들어갔으며 45년 샌프란시스코회의에서 최종
적인 헌장을 채택하여 45년10월24일 창설되었다.

유엔은 제1차세계대전후에 결성되었던 국제연맹이 30년대에 들어서면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 소련등 현상타파 세력들의 도전으로 약체화되었던 전철
을 밟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엔은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이라는 창설이념을 나름대로 수행
하고 있으며 특히 소련및 동구권이 붕괴된 이후로는 국제정치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유엔가입 4년만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기쁜 일이 아닐수 없다.

올 가을의 제50차 총회에서 확정되겠지만 아시아그룹의 단독 후보이므로
사실상 결정된 셈이라한다.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유엔가입 자체가 연기되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새삼
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