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사회를 앞장서 이끌어 나갈 대표주자가 없다"

국내에서도 몇년사이에 일반인들에게까지 멀티미디어라는 낱말이 어색하지
않게 됐지만 멀티미디어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인 정부와 국내 관련업체들
의 가장 큰 고민은 세계에 내놓을만한 멀티미디어 핵심기술이 우리 손에
없다는 점이다.

멀티미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보통신망이 사회 구석 구석에 깔려 있어야 하고 이같은 네트워크에 다양
하게 연결되는 컴퓨터와 PC 셋탑박스등 멀티미디어 기기가 보급돼야 한다.

또 이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와 구체적인 정보의 내용물이 다양하게
갖춰져야 한다.

한국산업은행이 최근 발표한 "21세기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전략"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산업을 정보통신기기 정보통신인프라
정보통신서비스등 3개 부문으로 구분해 미 일과 비교할 때 정보통신기기
기술은 미국의 50%수준에 불과하며 인프라와 서비스는 30%정도에 그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종합정보통신망(ISDN)기술은 미국을 100으로 놓았을 때 일본은
80% 한국은 30%수준을 보이고 있다.

위성통신제작및 발사기술은 미국을 기준으로 일본 80% 한국 10%이며
CATV 설비기술및 보급률은 일본 70% 한국 10%로 조사됐다.

컴퓨터 생산부문에 있어서도 일본이 90%로 미국에 근접해 있으나 한국은
30%에 그치고 있다.

양적인 비교에서뿐만 아니라 핵심기술의 확보를 기준으로 한 질적인 비교를
해보면 우리나라는 더욱 내세울게 없는 형편이다.

멀티미디어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있어 한가지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부터 불기 시작한 멀티미디어 분위기에 발맞춰
정부와 관련 기업에서 멀티미디어 기초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정부에서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을 내걸고 멀티미디어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관련 기업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선도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와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멀티미디어를 이끌어낼 수 있는 "킬러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도 멀티미디어 구성 요소 기술 모두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분야별로 한두가지의 핵심기술은 세계에 내놓을 수 있어야만
멀티미디어 사회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핵심기술은 멀티미디어 보급 확산에 기여하며 외국업체와의 경쟁에서
효과적인 협상카드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핵심기술을 통해 전세계적인 산업표준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시장을 효과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

최근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주최로 열린 "한국 하드웨어 산업 중흥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국내 정보통신 산업의 대외 경쟁력이 취약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대표주자를 양성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을 국산 하드웨어 산업과
연계 육성하는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역할분담과
하드웨어 사업을 제약하는 각종 행정규제 완화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
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우리나라 하드웨어 기술 수준은 멀티미디어PC등 일부에서
기술 개발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대용량의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서버나 이동형 멀티미디어 단말기등의 기술 개발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고백한다.

또 멀티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디지털 신호처리기(DSP) 고속
마이크로 프로세서등 반도체와 CD롬 드라이브 비디오서버 코덱등 하드웨어
장비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표준화된 컴퓨터및 주변 기기 개발을 활성화해야 초고속 정보화
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보통신분야에서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따라 매체의 융합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이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탄력있는 정보통신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의 멀티미디어산업은 이에대한 이해가 부족해 관련법및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멀티미디어 사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책당국의 관심이 지나치게 정보통신망이라는 하드웨어의 구축에만 집중돼
있어 소프트웨어와의 균형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멀티미디어사업은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추세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가
기대되고 있으나 현행 법률은 여전히 방송과 통신을 분리하고 있고 정부
부처간 업무협조도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관련업계에서는 가까운 미래를 대비한 핵심기술은 과감한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확보해야 할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멀티미디어시대의 대표주자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방법론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데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