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새지평을 열자] (23) 제2부 : 현대전자 <3>
지난 90년 당시 소련극동선박회사의 바라노프부사장은 현대전자 이천공장을
견학하고 아미문화센터를 돌아본 소감을 이렇게 편지에 적어 보내왔다.
그는 "현대그룹이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지시설을 잘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부러움섞인 분석도 덧붙였다.
경기도 이천군 부발읍 아미리 33만평 대지위에 자리잡고 있는 현대전자.
반도체업체답게 잘 정돈된 건물과 아름다운 조경은 마치 대학캠퍼스와
같다.
특히 1천5백평규모의 아미문화센터는 이회사가 자랑하는 명물이다.
6천1백여 여직원이 입주해 있는 여성기숙사내의 종합레저문화공간이다.
공연장 독서실 가야금교습실 디스코텍 에어로빅실 헬스클럽 노래방
비디오방등 온갖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천읍내에 나가지 않고도 모든 것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문을 나서 승용차로 3분거리에는 사원아파트가 있다.
대규모 사원아파트가 회사와 담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최근 6백60세대가 입주한 사원아파트는 평당 1백4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분양돼 화제가 됐다.
이회사는 지난 89년이후 2천7백75세대의 주택조합 사원아파트등을 공급해
기혼사원 주택보유율이 90%를 넘어섰다.
현대전자는 지난 83년 창립이래 한번의 분규도 겪지않아 "노사 무풍지대"로
불린다.
이 회사는 주택 문화시설등을 확충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을 사내
복지의 최우선과제로 삼아왔다.
기혼사원들에게는 쉽게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젊은
사원들에게는 서울도심 한복판 못지않은 문화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회사는 명목임금 상승률을 놓고 노사가 옥신각신하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
대신 회사는 능력이 닿는한 사원들의 실질소득상승에 노력해왔다.
노조집행부도 회사의 1류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생산과 품질에 책임을
다하면서 판매지원에 나서왔다.
이 회사가 84년 31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10년만인 지난 94년에 2조
1천억원으로 끌어올려 국내제조업체중 매출액성장률 1위의 초고속성장을
기록한 것도 노사관계안정에 힘입은 바 크다.
현대전자의 노무관리는 가려운 곳을 먼저 긁어주는 "선행관리"로 요약해볼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않겠다"는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시발점
이었다.
87년 노조설립붐과 함께 전국에 노사분규열풍이 불자 정몽헌회장은
"반도체회사에서 한번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세계시장에서 몇년 뒤쳐지고
결국은 도태하고 만다"며 노사문제에 관한한 직접 근로자들과 만나는
실무자들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근로자들의 요구 불만 고충을 초기에 발견해 해결해 주라는 지시였다.
현대전자는 "선행관리"와 "정서관리"를 두축으로 노무관리를 줄곧 펴왔다.
노무과라는 부서명도 노사협력과로 바꾸었다.
고충의 즉시처리를 위해 실무자의 재량권이 강화되다 보니 "노사관련
예산은 상한선이 없다"는 관행이 확립되기도 했다.
전문상담요원을 두고 개인의 고충처리에 만전을 기하는 이 회사의 고충
처리시스템은 노동교육원산하 노사협력센터에서 모범사례로 연구되고 있을
정도이다.
김주용사장은 "사원부터 감동시키는 고객만족경영이 21세기형 노사관계"
라고 말한다.
이회사가 무쟁의사업장의 역사를 유지해온데는 파트너로서의 노조집행부의
역할 또한 크다.
1,2대집행부에서 설립기와 정비기를 거친 노조는 92년 현노조위원장인
김영철위원장이 3기위원장을 맡으면서 안정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2기집행부 때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현총련)에서 탈퇴한후 실리.합리주의
의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노조는 생산성향상을 위한 노사공동선언문을 앞장서 제안해 채택하는가
하면 "10분전 출근 10분후퇴근" "5대 밝은정신추진운동"등 캠페인을 벌이고
회사제품판매와 생산현장독려에 노조간부들이 앞장서 왔다.
특히 김위원장이 먼저 제안해 지난3월에 가진 "노사불이 신문화결의대회"및
산업평화성화봉송식은 현대그룹은 물론 우리기업의 새로운 노사관계를
국민적 관심사항으로 승화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산과 품질을 노조가 주체적으로 책임지고 회사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생산적 노사관계가 우리회사에는 이미 정착됐다"고 김위원장은 자신있게
말한다.
현대전자 노사는 이제 근로자들의 사소한 요구에 세심하게 함께 귀를
기울이는 단계까지 왔다.
노래방 비디오방은 얼마든지 확충해줄 수 있지만 인간적인 대우는 정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서로가 잘 알고 있다.
"우리들 가슴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웁고/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거룩한
고향이 있다네/어머니 떠나온 우리/오늘 여기 사모정에 올라/그옛날 어머니
깊디 깊어 미처 깨닫지 못한/어머니사랑을 가슴열어/되안아 보자"
여직원기숙사 옆 "사모정"에 새겨진 시는 노동의 인간화가 회사의 작은
정성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천=권녕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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