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올초 청주 평택 구미등 전국 사업장(공장)별로 "주요 부품
국산대체 방안"을 마련토록 긴급 시달했다.

"초엔고"로 대일수입에 의존해온 핵심 자본재의 조달원가가 급등하고
있는데 따른 조치였다.

TV 냉장고 세탁기등 가전제품에서부터 컴퓨터 전화기 통신기기등 1백개
가까운 품목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회사가 외부에서 들여다 쓰는 부품수는
줄잡아 수천가지.

LG는 이중에서 일부만 국산대체를 해도 자사의 원가절감은 물론 한국
부품업계의 판로확대등 2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

그러나 각 사업장이 본사에 올린 보고서들은 "대체가능한 부품을 찾기
힘들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구매업무 경력 5년째인 이 회사 글로벌소싱팀의 김영수대리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부품구매 여부를 결정하는데는 세가지 기준이 있다.

품질(Q) 비용(C) 납기(D)가 그것이다.

이 QCD중 어느 한가지라도 충분하지 않다면 구매를 하기 어렵게 돼있다.

그런데 국산부품은 이 세가지에서 대부분 일본등 외국산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산대체가 가능하겠는가"고.

예를 들어보자.

LG전자는 수입부품의 금액조건을 국산제품과 비교할 때 수입가격에
"1.13"을 곱한다.

수입관리에 들어가는 각종 오버헤드비용을 감안해야 국내조달제품과의
가격비용을 동등하게 재볼 수 있어서다.

이를테면 일본서 A라는 부품을 한국돈으로 개당 1만원에 들여온다면
사내책정 비용은 1만1천3백원이다.

동일부품을 국내에서 1만1천원에 조달할 수 있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가
가격에서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국산부품이 적지 않다.

레이저 빔 프린터에 들어가는 레이저 스캐너 유니트나 스피커용 로드
안테나등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국산개발돼 수입대체가 가능하게 된지도 벌써 몇년이나 되는 품목이다.

LG전자는 일부를 그런 국산품으로 돌려 쓰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선 사업장에서의 반응은 "그래도 일제가..."라고
한다.

국산부품이 불합격딱지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불합격딱지는 "Q코스트"가 너무 많이 든다는 데 기인한다.

한마디로 불량률이 너무 높다는 얘기다.

"돈이 더 들어도 품질좋은 외국산을 쓰도록 해달라"는 건의가 일선
사업장에서 빗발치는 건 당연하다.

LG전자 구미TV공장의 한 관계자는 "웬만한 첨단.핵심부품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행위는 최종 완제품의 품질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얘기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국내 사업장에선 공공연히 돌고 있다"
고 말한다.

"품질뿐만 아니라 딜리버리(납기)를 맞추는데도 국내 부품업체들이 결코
경쟁적이지 않다"(LG전자 생산기술실 설비팀 김련태과장)는 지적까지
있고보면 국내 부품산업에 이만 저만 흠이 있는 게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할 것 같다.

상황의 심각성은 "Q.C.D" 3박자중 국내 부품업계가 더이상 가격(C)에서의
경쟁력만으론 버틸 수 없게끔 됐다는데 있다.

웬만한 부품은 대만 싱가포르에서 한국보다 훨씬 싼 값에 공급되고
있어서다.

예컨대 대부분 전기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파워코드의 경우 대만의
라인 테크사나 싱가포르 네이어사에서 공급되는 제품이 국내공급가보다 20%
이상 낮은 수준이다.

뿐만 아니다.

중국도 최근 일본 대만등의 부품업체로부터 기술협력을 얻어 이런 부품들
을 본격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월등하게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농산물등 1차산품과 섬유 신발등
경공업제품 분야에서 일으켰던 "가격파괴"바람이 부품 등 자본재부문에까지
확산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여기에 기계류 부품등 자본재를 가져다 쓰는 국내 조립업체들의 "발상
전환"도 한국 자본재산업에 경종을 울려다주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국산 자본재라고 해서 무조건 가져다쓸 수는 없다.

최종 제품을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있게 팔기 위해선 그것을 만드는 기계류
와 부품을 경쟁력있는 것으로 사용해야 하는 건 기본이기 때문이다"(이중돈
삼성전자 구매전략팀 선임과장)는 "QCD지상론"이 그것이다.

한국 자본재업계가 홀로설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내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해 자구책을 세우는
일부터가 급선무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