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였다.
한결같이 보기 드물게 미인이고 착한 처녀들인데 그 집안 분위기에
눌려 지내는 것이 안쓰럽게 여겨지더라고 하였다.
자홍은 가씨댁 딸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정 대감의 맏딸인 원춘은 효성이 지극하고 재덕을 겸비하여 궁중으로
들어가 여사(궁녀의 일종)로 있고, 가사 대감의 맏딸인 영춘과 가정
대감의 둘째딸인 탐춘은 각각 소실의 몸에서 태어났고, 녕국부 가경
대감의 딸이요 가진 대감의 누이동생은 이름이 석춘이었다.
"그런데 가씨댁 따님들 이름이 왜 속되고 촌스럽게 춘자 돌림일까?"
우촌이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원춘이 정월 초하루에 태어나 그런 이름을 가질수 밖에 없었고,
그 밑 동생들은 그 춘자를 따르게 된 것 뿐이지.
그러니 속되고 촌스럽다고 볼 것이 아니네.
원춘 윗대의 여자들 이름은 상류층의 관습대로 모두 남자형제의
이름자를 따르고 있지.
그 일례로 우촌형이 기거하고 있는 그 임씨댁 부인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자홍이 우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렇지 않으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 임씨댁 부인이 그럼 가씨댁 사람이란 말인가?"
"그렇고 말고. 그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나?
시집 오기전에 그 부인의 이름은 가민이라고 했지.
가사 대감과 가정 대감의 누이동생이라네. 믿어지지 않거든 임여해
대감에게 물어보거나 부인에게 직접 물어보게나"
"부인은 한달여 전에 돌아가셨네"
"아이구, 저런. 난 모르고 있었네. 어쩐지 그 집안 분위기가 바깥에서
볼 때도 좀 적적해 보였네.
하긴 난 지나가는 나그네니까 모를 만도 하지. 아마 딸이 하나 있지?"
"임대옥이라고 똑똑한 아이지. 지금 생각하니 그 딸아이가 책을 읽다가
민자만 나오면 왜 밀이라고 읽었는가 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구먼.
바로 자기 어머니 이름이기 때문에 그대로 읽을 수가 없었던 거지.
난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글자를 모른다고 꾸짖기도 했거든.
그리고 민자를 쓸 때도 꼭 한두 획을 빠뜨리고 써서 나에게 혼나기도
했지. 따지고 보니 그 아이가 영국부의 외손이 되는구먼.
이렇게 연결이 될 줄이야. 그래서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그러는군.
내가 가씨이긴 하지만 임대옥의 임씨가 훨씬 영국부 가씨와 가깝군
그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