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국토개발연구원장 >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의 북경 발언이 여러모로 파란을 불러오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므로 그의 발언은 그만큼 무게가 실릴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쏟아놓은 불만은 크게 두가지인듯 싶다.

공장짓는데 도장이 1,000여개가 필요할 정도로 규제가 심하다는
점과 외국에서는 공짜로 내주기도 하는데 부산의 삼성승용차 공장
부지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우국충정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하였지만 공장터 찾느라 고통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야 할 대기업 총수로서의 발언으로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우리의 땅에 대한 규제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90여개가 넘는 토지관계법이 얼기설기 얽혀서 중복규제되고 담당
부서마저 모호하여 서류가 빙글빙글 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업하려고 공장터를 찾아나서면 쓸만한 땅은 찾기 힘들고 그나마
터무니없이 비싸다.

전국에서 개발되어 있는 땅이 고작 국토의 4.4%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땅의 이용에 인색하였는지 알수 있다.

택지 공장용지등 땅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데 개발 가능한 땅은
한정되어 있으니 땅값이 오를수 밖에 없다.

지난 개발연대동안 땅값은 천장을 모르고 뛰어 올랐다.

이것이 지금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자.우리나라 같이 좁은 국토에서 토지이용을
효율화하자는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토지는 한정되어 있다.

지난 개발연대동안 마구 훼손되고 더럽혀졌다.

더이상 훼손되거나 더럽혀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땅에는 적절한 용도가 지정되어 있고 거기 맞도록 써야 한다.

그리고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차원에서 공장 신설을 억제하는 지역이
있고 장려하는 지역이 있다.

이에 상응하는 규제가 있다.

이에 맞춰서,또는 공업단지내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면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러면 어디서 마찰이 생기는가.

공장을 짓기에 부적합한 지역에서 공장을 지으려 할때이다.

이를테면 환경오염의 우려,주변 주민들의 민원 또는 수도권의 과밀을
더 심화시킬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규제가 불가피하다.

신경제계획의 일환으로 준농림지역의 이용은 대폭 완화되었고 공장설립
인.허가절차도 대폭 줄였다.

작년에 개정된 "공업입지법"의 내용은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토지쿠데타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장입지의 자율성을 높여 주었다.

유럽 선진국들은 땅에 관한 한 우리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계획없이 개발없다"는 철학이 예부터 지켜지고 있다.

영국에 런던 주변,프랑스 파리 주변의 공장설립은 여러모로 제한을
받는다.

기업은 농촌의 땅을 넘보지 않는다.

대만이나 일본의 경우도 토지전용이나 공장설립에는 까다로운 규제가
당연히 따른다.

환경영향 교통영향 등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 지역주민들과
공청회를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공장용지는 주로 정부에서 국가공단 또는 지방공단을
조성하여 분양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이는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막고 공업단지를 국토개발 전략에 맞춰
배치하고 공단개발과 함께 도로 상.하수도등 공공시설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개발을 할수 없는 중소기업들만이 주로 공공기관에서
개발한 공단의 고객이었다.

대기업들은 적당한 땅 골라서 약쓰고 떼써서 용도 바꾸고 눌러앉아왔다.

이런 땅은 쌀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에서 조성한 공업단지에는 기반시설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자유입지의 경우에는 거의가 공짜 덤타기( free-riding )이기 때문이다.

교통이나 용수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서 해결해 줄수밖에 없다.

농지나 임야를 적당히 용도변경했거나 해안매립 허가를 얻어 확보한
땅이면 공장짓는척 하는 사이 땅값만도 몇배가 뛰게 마련이다.

지금도 정부가 큰 비용 들여서 조성한 지방의 공단들은 분양실적이 좋지
않다.

입지에 제약이 많은 중소기업들은 지나친 규제가 힘들겠지만 대기업들은
지방의 대불공단이나 군산공단으로 들어가 지역발전에도 도움을
주었으면 싶다.

이것이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수도권에서 공장의 신설이 어려워 적기에 투자할수 없다고 하는데
반도체공장이 꼭 수원이나 이천에 있어야 하나.

이대로 가다가는 수도권 전체가 공단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날 이렇게 높은 땅값이 형성된데는 대기업들의 책임이 왜 없겠는가.

은행대출받아 땅 사고,그것을 담보로 또 비업무용 땅 사고,이것이
올라 재평가하면 자산주되어 주식값 또 오르고.이런 장사를 해오지
않았던가.

지난 2년간 상당히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부 관료행정이
번거로운 절차와 관행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토지이용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은 좋으나
토지의 난개발을 허용할수는 없다.

좁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환경 훼손으로부터의 보호는 토지정책의
근본 바탕이다.

우리의 한정된 토지자원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 삶을 위해 이 자원을 아껴 써야 한다.

토지는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