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문명의 결실에서 생활의 갖가지 편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문명이 진보에 진보를 거둡하면서 인간은 급기야 극한적인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동물학자였던 F H 파브르가 일찌기 "곤충기"에서 "인간은 문명의 지나친
발달때문에 자멸하여 쓰러지고 말 날이 올 것"이라고 한 예견이 맞아
떨어져 가고 있는 듯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명의 반역아로 지칭되는 전쟁무기의 개발이 가져다 준 후유증에서
인간자멸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오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무기의 실험 내지는 사용으로 인한 유전적 기형아 출생이 그 단면이라 할수
있다.
요즘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베트남-전후20년"이라는 주제의
사진작품전에서 그 적나라한 실상을 확인하게 된다.
미군이 월남전쟁중에 공산군의 은신처였던 밀림의 초목을 말려 죽이고자
뿌렸던 고엽제가 탄생시킨 기형아들의 모습이다.
손과 팔이 없거나 팔과 다리가 없고 손가락이 없거나 엉덩이에 커다란
혹이 돋아난 어린이들의 기형에서 인간자멸의 예견이 현실로 닥아오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소련의 주요 핵실험장들이 있었던 카자흐스탄의 인근 세미팔리틴스크지역
주민들에게서도 그 가혹한 후유증이 속속 나타났다.
대기핵폭발실험에서 방출된 방사선에 노출되어 불치의 강종 암에 걸려
수많은 주민들이 죽어간 것은 물론 그에 오염된 주빈들에게서 신체기관이
퇴화된 기형아들이 많이 태어났던 것이다.
이 지역주민들의 거센 압력으로 지난93년 이곳에서의 핵실험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 유전적 질병의 후유증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수없는 숙제로
남아있다.
체르노빌원전 방사능유출사고 9주년을 맞은 어제에는 그 여파로 기형아로
태어난 한 소녀가 손이 없는 반쪽 팔들로 빵을 먹는 모습의 사진이 신문
지상에 보도되어 문명의 비인간성을 다시금 되새겨 주게했다.
전후 최악의 핵참사였던 체르노빌사고의 현장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더욱이 앞으로 그 후유증때문에 10만명이 죽을 것이고 100만명이 암에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추산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기형아의 출생숫자
또한 엄청날 것이다.
방사선은 다른 환경오염과는 달리 유전자에 손상을 입혀 그 피해가 누적
되어 후손들에게 전달된다는 구성은 성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파브르의
예언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