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근무를 시작하였다.
당시 조사부는 경제조사계와 신용조사계를 두고 있었으며, 필자는 경제
조사계에서 지역경제 분석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기업신용조사업무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얼마후에 신용
분석사 전과정(총16주)을 이수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연수교육을 마친 후 77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용조사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
실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후 80년 가을에 평소 꿈꾸어 왔던 대학강단에 서게 되면서 정들었던
대구은행을 떠나 경북대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첫직장을 떠나 대학연구실에서 바쁜일정을 보내고 있던 82년의 봄 어느날
대구은행 신용분석사회의 결성 소식을 접하고 기쁜 마음으로 모임에 뛰어
나갔다.
초창기의 회원수는 불과 15명전후에 불과하였지만 걸집력은 대단하여 정기
모임에 빠지는 회원의 거의 없을 정도였다.
회원중에는 대구은행의 신용조사업무를 처음으로 개척했던 이화언지점장
(역삼동지점), 서영택이사(대은금융결제연구소), 권기복이사(경일투자
금융), 이상국사장(대명유압), 이중호지점장(문경지점), 장주효지점장
(봉덕동지점), 최준석지점장(인재양성원), 한철순소장(은하아파트출장소),
김해룡소장(효성아파트출장소), 서병태지점장(황금동지점), 박성동지점장
(고성동지점), 신정섭지점장(대구리스 서울지점), 박국경사장(남도섬유),
김성진 조사역, 하춘수실장, 신덕염과장등과 필자가 주축이 되어 활동
하였다.
소규모로 출발했던 모임이 이제는 정규회원 1백11명을 거느린 거대한
조직체로 변화된 것을 보면서 세월이 꽤나 많이 흘러갔음을 느끼게 된다.
매 분기 별로 정기집회를 가지고 업무정보의 교환, 길흉사시의 부조금
전달, 승진시 기념품 전달등을 통하여 회원상호간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하계세미나 행사에 있다.
하계세미나는 신용조사관련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한 전문지식 습득뿐만
아니라 회원상호간의 친목과 단합을 다지는 매우 유익한 행사이다.
흥희음 행장을 비롯한 역대행장들의 관심과 지원도 유별나서 비회원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동시에 받고있다.
해마다 8월하순이 되면 회원들은 세미나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은 풍선
처럼 부풀어 오르고 행사당일에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기도 한다.
팔공산, 덕유산동, 수안보속리산, 주황산, 한려수도, 지리산등 전국의
관광명소를 돌면서 개최하고 있는 하계세미나행사에 대한 회원들의 관심과
열정은 좀체로 식지 않을것 같다.
첫직장에 대한 향수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대구은행 신용분석사회의 무궁한
발전이 회원및 대구은행의 지속적인 번영으로 직결되기를 기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