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국제경쟁력이란 말을 쓰는것을 조심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작년 초부터 미국에서는 국제경쟁력에 관한 논쟁이 벌어져 왔다.

80년대에 전개되었던 "관리무역이론"의 선두주자인 스탠퍼드대의 크루그먼
교수는 "국민경제의 국제경쟁력이란 무의미한 개념이며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고 단언한바 있다.

이런 결론이 나온 배경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냉전체제의 붕괴이후 미국내에서는 체제대결에서는 미국이 승리했지만
서방에서의 경제적 대결에서는 패배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대두되었다.

그런 우려에 근거하여 미국경제의 진단과 대책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것들이 많이 있다.

그것들 중에는 현재 클린턴 행정부의 각료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도
여러개 있다.

그와 동시에 80년대에는 새로운 무역이론이 전개되어 자유무역보다는
관리무역이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현 미정부
무역정책의 핵심도 자유무역보다는 강력한 협상과 대응을 통한 정부역할의
강화인 것 같다.

대 일본 무역협상에서 일본의 대미무역흑자와 미제자동차수입에
관한 수치목표설정을 주장하는 것등이 증거라 하겠다.

앞에 지적한 관리무역이론의 배경은 간단하다.

70년대와 80년대의 세계무역의 상당부분이 자원조건이 비슷한 선진국들
사이에서 일어났으며 또한 그것은 산업간무역이 아니라 자동차산업이나
전자제품산업과 같은 산업내 무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산업내무역은 종래의 무역이론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요산업들의 시장구조는 완전 경쟁적이 아니라 손꼽히는 대메이커들에
의해 구성되는 과점시장이며 이런 과점시장에서는 제품다변화에
의해 어느 정도의 독점력이 발생하며 따라서 자유무역보다는 정책적
개입에 의해 효율성이 증진될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런 신국제무역이론을 전개함에 있어 선두주자였던 크루그먼교수는
이미 87년에 관리무역정책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유인즉 정책적 정부개입은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초래,그런 사회적
비용이 이득보다도 커질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자유무역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강력한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졌던 클린턴행정부의 일부각료들에 대한 비판이
크루그먼교수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크루그먼교수에 의하면 우선 기업과 기업사이의 경쟁이란 개념이
국가간에는 적용될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과 기업사이의 경쟁은 얼마나 많은 매상고와 이윤을 발생시키느냐에
의해 경쟁의 결과가 결정된다.

그러나 나라와 나라사이의 경쟁의 결과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무역수지의 흑자나 적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무역수지의 적자는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해외의존도가 낮은 나라에서는 무역수지의
흑자나 적자로 인한 환율조정과 교역조건의 변화에 의한 득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대GNP수입비중이 10%정도이기 때문에 1%의 환율상승은
0.1%의 해외구매력 감소에 그친다는 것이며 수출증대효과를 무시한다해도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경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내부문제이지 국제경쟁력의 저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방만한 사회보장제도,낮은 저축률,근로의욕의 저하,낮은 생산성
증가율등이 미국경제의 성장을 저해하는 기본적인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그런데도 정치가들은 미국경제의 문제를 국제문제로 비화시켜 무역상대국들
에 그들의 문제를 떠넘기고 있다고 크루그먼교수는 비판하고 있다.

이런 논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겠는가.

첫째로 우리의 경우는 미국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의 해외의존도는 미국의 3배에 가깝다.

따라서 환율변동과 교역조건의 조정에 의해 발생하는 해외구매력의
변동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우리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수출확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요수출품목들도 점차 중공업제품으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기업들도 경쟁시장 보다는 과점시장에서 경쟁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자유방임만이 최선의 정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선진국들이 직면하고 있는 내부적 성장저해요인들에
관심을 갖고 그런 구조적 저해요인들을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는 이제 초보단계여서 대폭 확대되어야 할 입장이지만
장기적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연금제도 의료보험제도 실업보험 그리고 서민주택과 대중교통수단등이
잘 돼 있으면 임금상승에 대한 압박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며,따라서
정부주도로 시행되는 각종 사회보장제도는 기업들의 경쟁력과 무관하지
않다.

단 국민들의 건전한 시민의식이 살아나야만 그런 사회보장제도의
남용에 의해 발생하는 선진국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

제도적 변화와 함께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의식의 변화를 위해선 정규학교교육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일반시민들을
위한 사회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