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끝난 한.미 통신협상에서 한국의 일방적인 양보를 받아낸데
이어 감귤류의 통관문제와 관련,WTO(세계무역기구)에 한국을 제소한
상태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초콜릿 팝콘등 자국산 식품에 대한 한국의
통관제도가 사실상 무역장벽이라면서 이의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작년 한햇동안 우리의 총교역액은 2,000억달러를 넘었다.
교역규모에 비춰볼때 오렌지나 초콜릿쯤이야 미국의 입맛대로 시장을
열어준다고 해서 우리의 교역균형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는 개별상품의 시장개방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팝콘처럼 시장규모가 작은 품목이라도 미국의 개방공세 의지가 확고하다는
인식을 한국에 과시 하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식료품을 둘러싼 통상문제를 미국의 의도대로 해결함으로써 계속
이어질 다른 통상현안에서도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이
숨어 있다.
미국은 조만간 자동차시장 지적재산권 의료장비,그리고 육류의 유통기한문제
등과 관련해서도 개방압력을 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 중국 대만등 아시아지역에 대한 무역공세를 강화하기
위해 아.태지역 무역투자정책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미국이 올들어 유난히 한국에 대해 통상압력의 고삐를
죄는 것은 한국을 모델로 삼아 우선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함으로써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고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205억달러를 수출하고 215억달러어치를 수입함으로써
1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나타냈다.
그런데도 미국의 시장공세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미국이 개방한만큼
한국도 개방하라는 미국의 통상외교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는 미국의 개방압력이 앞으로는 대미 무역수지의 균형여부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가해질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는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그동안 국내시장을 개방하되 산업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방속도를 늦추고 개방폭을 제한하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따라서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자연 방어적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통상협상 관계자들이 대미협상에서 전반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인데는 이같은 한.미간 입장차이와 관련해서 생각할 때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처럼 미국의 공세에 무조건 발등의 불끄기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곤란하다.
WTO체제안에서 우리시장의 개방폭과 속도를 조절하려면 미국보다
한차원 높은 대응논리의 개발이 절실하다.
이는 우리정부의 분명하고 일관된 통상전략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미국의 개방압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할만한 전략이나
정책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정부안에 대외 통상현안이나 경제외교를 종합적으로 다룰 지휘본부가
없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드시 미국식 통상대표부가 아니더라도 부처간 정보를 교환하고
통상문제에 대해 전문적 조직적으로 대응할 체제는 갖추어야 한다.
WTO시대를 맞아 우리의 통상외교 전략도 전면 재검토될 때가 온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