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윤 <한국외국어대 동남아학 교수>

중국이 최근 필리핀령 팔라완(Palawan)섬과 인접한 스프래틀리(Sprately
: 남사군도)군도의 한 산호섬에 영구 건축물로 보이는 시설물을 설치한
것이 보도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남지나해의 파고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필리핀의 강력한 항의에 맞서 조업중인 어선과 선원들의 피난을 위한
가건물이라고 반박하면서 중국은 당초 5월초로 예정되었던 양국간의
쌍무회담을 3월로 앞당기자는 마닐라정부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는등
이 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고있다.

지난 1990년이래 동남아문제의 핫 이슈의 하나로 등장한 스프래틀리군도는
54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남지나해에 폭넓게 분포된 430여개의 작은
산호섬들로 지정학적요충이라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여
중국과 베트남이외에도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브루나이와 대만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스프래틀리군도는 그후 300억t이상으로 추정되는 원유와 구리 망간 주석
알루미늄등이 다량 매장된 천연자원의 보고로 알려지면서 영유권분쟁이
본격화되었다.

스프래틀리군도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중국에서 6개소,베트남에서
21개소,필리핀과 말레이시아에서 각각 3개소,그리고 대만에서 1개소에
자국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어서 영유권분쟁의 심각한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이 오랜 갈등끝에 국교를 재정상화한 1991년 한햇동안에도
스프래틀리군도 문제가 양국간의 최대현안으로 등장했었다.

중국은 1992년에 들어서자 대륙붕임을 내세워 스프래틀리군도 전체를
포함한 남지나해의 대부분 도서를 자국영토로 규정한 영해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북경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1992년5월 미국 크레스톤( Creston )사와
공동으로 남부 베트남의 남쪽 300 지점에서 해저유전 탐사를 시작했다.

하노이 정부는 물론 이를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중국은 이 계약이
북경정부가 전통적으로 주장해 온 자국의 역사경계선 내에서 이루어진
것(중국은 이 지역에서 진.한시대의 토기를 발굴하였다고 발표함)이어서
적법하다고 이를 강행하였다.

그러나 하노이정부는 1994년4월 중국과 크레스톤사의 공동탐사 지점에
매우 인접한 지역으로 미국의 모빌( Mobil )사를 주축으로 한 일본의
MJC원유컨소시엄을 끌어들여 본격적인 탐사작업에 들어갔다.

베트남측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미.중공동탐사 구역내에서 미국의
콘티넨털( Continental )사와 공동시추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으며
중국측도 이에맞서 이 지역으로 해군력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전개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양국이 스프래틀리군도 문제로 첨예한 대립양상을
나타내자 아세안 회원국들은 제25차 외무장관회담에서 중국과 아세안국가,
베트남과 대만등의 국가들이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분쟁을 자제하고
스프래틀리군도의 공동개발과 평화적 이용을 추구하는 "남지나해선언"을
채택하고 옵서버로 참석했던 전기침중국외교부장과 응웬 만 캄(Nguyen
Man Cam)베트남외무장관의 서명을 받아냈다.

나아가서 아세안 6개회원국은 1994년10월 스프래틀리군도에 대한 이해
당사국이외에도 캄보디아와 라오스등 여타 동남아국가들까지 동원하여
총11개국 이름으로 스프래틀리군도의 평화적이고 상호 협력적인 개발을
재차 다짐한바 있다.

스프래틀리군도를 둘러싼 국제적 분쟁이 중국과 베트남 양국간의
고질적인 국경및 영해권 분쟁의 일환으로부터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등
아세안국가가 개입된 다국적 문제로 발전되어 나가는 양상을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분석할수 있다.

그중 하나는 이 지역에서 아세안의 역할과 위상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측면이고 또 하나는 스프래틀리군도가 다국적 자원공동개발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측면이다.

1979년의 중.월전쟁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온 베트남과 중국이
1991년 13년만에 국교를 재정상화하는데는 아세안의 지지와 지원이
지대했으며 지난 15년이상 아세안과의 선린관계를 유지해온 중국 또한
무력을 동원하여 아세안 국가들을 자극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되는 상호간의 무력시위 속에서도 직접적인 충돌을 최대한
자제할 것이다.

동시에 스프래틀리군도의 분쟁격화를 호기로 삼아 베트남과 중국을
위시한 이해 당사국들은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한국과 대만,그리고
일부 유럽국가들까지 남지나해로 유치하여 개별국가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자원의 다국적 공동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