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세계은행의 경제자문팀이 한국에 왔다갔다.

그들은 우리나라 교통문제의 진단을 위한 경제전문가팀이었다.

그둘중 우리보다 경제발전이 아주 늦은 나라출신인 한사람이 필자에게
매우 인상깊은말을 남겼다.

오늘날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가져오게한 요인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대한 관심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자기나라같으면 국내에서 웬만한 경제문제가 새로 발생해도 정부만
관심을 가질뿐 국민들은 도대체 관심조차 갖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경제 이슈가 새로 생기면 정부 언론 학계 재계가
진지하고도 열띤 논쟁을 벌임으로써 온나라가 떠들썩해지는 것을
보고 활력적인 한국경제의 새로운 비밀을 안것 같다고 그는 토로했다.

15일 한국은행의 94년 잠정국민계정발표와 함께 경기파열여부가
국내에서 열띤 논쟁거리가 된것 같다.

우선 94년 GDP성장률이 8.4%를 기록하여 93년 5.8%,92년 5.1%에
비해 굉장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만 봐도 금방 우리경제가 과열되고 있지않나 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GDP성장의 내용을 보면 94년 제조업생산증가율은 10.4%인데 이것은
93년 5.0%,92년 5.1%에 비해 두배나 증가한 것이다.

한편 94년 민간소비증가율은 7.4%로서 93년 5.7%,92년 6.1%에 비해
다소 증가했지만 제조업만큼은 못하다.

그러니까 예년에 비해 94년 GDP성장이 특별히 높게된 것은 제조업생산의
급증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그래서 언론및 학계일각에서는 우리경제가 과열로 가고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들은 과열경기의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경기과열은 물가를 부추겨 서민생활에 주름을 낼 것이며 인력의
과부족으로 임금이 상승할 것이고 따라서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킬수
있다.

그리고 설혹 인플레압력없이 수출에 의해 국내경기가 확장되었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해외수요가 급감하면서 대량실업이 발생하여 사회불안까지
야기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GDP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경기가
아직과열된 것으로 보지않는다고 했다.

우선 7~8% GDP성장률은 우리나라 장기균형성장률이기도 하며 제조업의
급성장도 그 내용을 보면 기업의 설비투자와 수출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때문에 건실한 성장이라고 보고있는 것이다.

사실 한나라의 경제가 과열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가리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과열여부의 측정을 위한 이론적 접근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단순히 94년 성장이 93년 92년보다 높아졌다고 해서 경기과열로
볼수는 없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대개 경기순환이론을 적응시켜 과열여부를 측정하기도
한다.

경기의 수축기와 확장기를 파악하여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려고 하는데
경기의 최저점과 최고점을 찾는 것이 여간 어렵지않다.

여기에는 통계자료의 처리문제도 있지만 개별분석자마다 주관적
판단을 게재시키기 때문에 경기의 수축기간과 확장기간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통계청의 분석에 의하면 현확장기의 우리나라 성장률은 다소 높지만
타확장기에 비하면 생산 투자 수출등 실물분야가 균형있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명목임금이나 명목금리및 물가등의 상승률은 타확장기에
비하면 비교적 낮기때문에 지금 경기과열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다소
이른감이 있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편 재계의 시각은 매우 다르다.

지금 우리경제는 절대로 과열이 아니라는 확고한 입장을 대부분의
대기업총수들은 가지고 있다.

총괄적 경기를 나타내는 수치가 다소 높게 나타난다고 해서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지금의 경기확장은 중화학공업에 의해 주도된 경기확장이며 이것이
아직 경공업부문에까지 골고루 퍼지려면 좀더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재계가 언론일각에서의 과열주장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재계는 우리나라 통화당국의 금융정책운용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번 경기논쟁에서 만일 과열이라고 판정이 나는 경우에는 그 즉시
통화긴축이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되면 우리경제가 모처럼 얻은
경제활황의 기회를 스스로 망가뜨리게 될까봐 경기과열주장에 대해
재계는 엄청난 알레르기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경기과열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의 논쟁과정을 지켜보고 필자가 느끼는 문제점은 정부 언론
학계에서 적지않은 사람들이 경기과열이면 곧 통화긴축이다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경기과열의 주장을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설혹 경기과열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급격한 통화긴축은 곤란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플레의 원인으로 해외원자재가격의 급등을 절대로
무시할수 없다.

만일 선거나 정치적 이유로 정부당국이 통화를 남발하여 인플레가
되었다면 당연히 통화긴축이 특효약이다.

그러나 해외요인에 의해 인플레가 된 경우 급격한 통화긴축을 통해
2중 3중으로 국내경기를 스스로 죽일 필요는 없다.

그대신 목표물가상승률을 어느정도 상향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통화공급목표는 다소 하향조정해야 한다.

이번 경기과열논쟁을 계기로 통화당국은 기존의 파인튜닝 (fine
- tuning) 에 입각한 직접통화규제의 잔행을 중지해야한다.

그래서 통화운용에 대한 재계의 불신을 씻어야 한다.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경기과열논쟁은 우리경제를 건강하게 하지만
고압적 권위와 원초적 불신이 깔린 논쟁은 우리경제를 병들게 할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