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박영실] 옷은 메시지를 말한다: 성공리더의 비밀 최근 출간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출간 과정에서 한 문장, 한 단어를 고치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수많은 밤을 지새운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고된 시간들은 이제 감사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 책이 단순히 읽고 지나가는 글이 아니라, 독자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구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성공한 리더들의 패션에 대중이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옷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천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담아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며, 때로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도널드 트럼프의 붉은 넥타이는 보수와 강력한 리더십을 상징하고, 카멀라 해리스의 진주 목걸이는 그녀의 품격과 신뢰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옷은 단순한 외모를 넘어 국민의 신뢰를 얻거나, 반대로 비판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스타일은 리더십의 또 다른 언어다 정치인과 기업 리더들은 옷차림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설계한다. 윈스턴 처칠의 시가와 볼러 모자는 강력하고 결단력 있는 이미지를 전달했고, 마하트마 간디의 도티는 자립과 독립의 상징이 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화이트 팬츠 슈트를 선택했고, 에마뉘엘 마크롱은 에너지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터틀넥을 자주 착용하며 메시지를 담았다.성공한 리더들은 매일 아침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해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정체성을 고민하며,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을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충청도 어느 마을에는 삼한시대부터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 비옥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 덕분에 해방 이후까지 군민이 꾸준히 늘었다. 그러다가 1964년 인구 정점을 맞았다. 도시에 산업 인프라가 조성되자 청장년은 일자리를 찾아, 아이들은 학교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1964년 군민 수가 100이라면, 30년 후 47까지 뚝 떨어졌다. 저출생 쇼크까지 맞닥뜨려 인구는 지금 28 수준이다. 60년 새 고향 사람의 4분의 3이 사라진 셈이다.최근 ‘식품 사막이 됐다’는 기사도 나왔다. 소비자가 많지 않아 상점가는 철수했고 식자재를 사기 힘든 마을이 됐다는 것이다. 또 시장이 있어도 왕복 3시간 걸리는 ‘교통 사막’, 약국조차 닿기 어려운 ‘의료 사막’, 학교에서 떨어진 ‘교육 사막’이 됐다. 고향이 모래사막이 된 느낌이다. 구·시·군 절반에 ‘소멸 위험’ 경고등이 들어왔다.그렇다고 손만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될 무렵부터 지금까지 대도시 인구 집중을 막는 정책을 100여 개나 내놨다. 기업에는 지방형 ‘혁신단지’를 제공했다. 기업 유치를 위한 경제자유구역, 규제자유특구, 기회발전특구 등 특성화 단지가 전국에 1000여 개에 이른다. 이주민에게는 ‘요람에서 대학까지’ 파격 지원한다. 아파트, 복합문화공간뿐 아니라 양육지원금, 돌봄교육, 스터디 카페보다 뛰어난 학습관, 대학 등록금도 지원한다.다만 소멸 경고등을 잠깐 꺼둘 수는 있어도 추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과감하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를 들여와 철옹성 규제를 서서히 무너뜨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파동이 참담한 실착으로 끝났다. 지도력은 심각하게 훼손됐고 시민들의 불신은 깊어졌다. 정국은 대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안보 분야의 영속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자유주의 복원을 기치로 내건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좌파적 토양을 걷어내는 데 많은 역량을 쏟아부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 때도 ‘반국가세력 척결’을 첫손가락에 꼽았다.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입법폭주와 발목잡기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주도면밀하지 못했고 판단 능력도 부족했다.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택한 것, 국무위원 상당수의 반대에도 결행한 것, 자유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반법치·반헌법적 행태를 보인 것, 모두 문제적이다. 윤 대통령은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윤 대통령의 착오와 무책임을 추궁하는 것과 별개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한국 사회는 경제 산업 문화 군사 분야의 눈부신 성취에도 늘 정체성의 혼돈을 겪어왔다. 정체성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느냐에 대한 공감대다. 우리 국민이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으며 어떤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느냐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의 좌우 대립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배양되고 착근된 것이다. 박정희 장기 독재와 가혹한 군부정권의 압제 속에서 배태된 반미·반일·반기업 캠페인은 역설적으로 경제 성장의 자양분을 받아먹으면서 마침내 우리 정치 지형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에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