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국민대학 맞은편 산속에 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수년전의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도심으로 나가려고 할때에 나는 그반대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단 한가지 산이 좋아서였다.

사시살철 산속에서 살면서 그것도 부족하여 주말이면 산행을 한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때는 같은 마을에 사시는 어른 몇분과 우리 부부가
함께 다녔으나 그분들이 연세가 많아 산행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또는
마음을 떠나 딴곳으로 이사한 경우도 있어서 함께 산행하기가 어려워
지던 시기에 등산에 취미를 가진 재경향우회의 몇몇 사람들이 각각
다닐 필요없이 함께 모여 산행을 하자는데 의기투합하여 모인것이
"보은산악회"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이면 국민대학앞에서 만나 북한산으로 산행을 한다.

모이는 인원은 일정치가 않다.

특별한 연락없이 정해진 시간에 모이는 사람들만 함께 산에 오른다.

산악회라고해서 틀에박힌 규정이나 규약이 있는것도 아니고 대표나
임원이 있는것도 아니다.

그저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고향소식과 정담을
나누면서 하루의 산행을 즐긴다.

산행의 즐거움과 느낌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코스에 따라 다르며
함께가는 일행에 따라 다르다.

산은 봄 여름 가을 경울의 사계가 뚜렸하고 그에따라 느낌과 맛도
다르다.

봄이면 천자만홍이고, 여름이면 녹수청산이며, 가을이면 만산홍엽이요
겨울이면 백설만곤이다.

같은 산이라도 코스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우리 "보은산악회"는 주로 북한산을 오르는데, 그것도 대개는 형제
봉능선을 통하여 인건사와 대성문을 거쳐 진달래능선을 따라 4.19탑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같은 코스라도 함께가는 일행에 따라 다른데 우리 "보은산악회"
는 고향을 같이하는 동향인의 모임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정답고 화기
애애한 가운데 산행을 한다.

앞서 말한대로 회장이 따로 있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락사항같은
것을 챙기는 일은 본인이 떠맡는다.

조촐한 간식이나 따뜻한 커피준비도 지역부녀회 활동에 적극적인
이영식여사의 몫이다.

산좋고 물좋은 충청도 보은의 고향소식을 아기자기하게 전해주는
역할은 이한욱보은신문사장이 맡고있다.

길안내는 밤중에도 산길걷기에 일가견을 자랑하는 국정교과서 김교근
상무의 소관사항. 산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일행의 기분을 계속 북돋우는
것은 조양전자 김정관사장의 유머감각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