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경제는 8.5%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92,93년 경기둔화에 이은 회복기의 성장으로서는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2년간 5%대의 경기둔화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86년부터 91년까지
연평균 10%를 넘는 과열성장을 했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 경제는 공급능력면
에서 별 여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력.금융등 생산 요소시장이 적지않은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 4.4분기중 실업률은 2.0%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실업률 통계의 신뢰성이 아무리 낮다고해도 그 추세를 관찰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구인난이 심각한 가운데 제조업 임금상승률은 15%에 달하고 있다.

자금사정은 어떤가.

작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12%대에서 머물던 시장금리(회사채수익률 기준)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큰폭으로 확대되면서 금년들어 15%를 넘어서고 있다.

초단기 금리는 이자 상한선인 25%를 육박하고 있다.

제조업 설비가동률도 근래에 거의 기록적인 85%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런 진단에 수긍한다면 정책대응은 자명하고, 정부도 이미 긴축의 고삐를
당기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인플레를 몇년안에 선진국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의욕도 만만치 않다.

사실 물가불안은 서민가계의 장바구니 걱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환율이나 금리와 같은 기본적인 가격변수를 왜곡시키든가 불안정하게
만들어 기업의 경쟁력마저도 약화시킨다.

환율이 국내외 인플레율의 차이보다는 단기적으로 외화의 순유입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 상황에서 국내물가불안은 수출의 가격경쟁력약화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또한 인플레의 가속화는 그만큼 명목금리의 상승을 초래하여 가뜩이나
힘겨운 기업의 금융비용부담을 가중시킨다.

빠르게 성장하자면 인플레는 불가피한 대가라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맞는 얘기이지만 길게 볼때에는 틀린 생각이다.

물가불안을 초래하는 능력이상의 성장은 조만간 "브레이크"가 걸려 까먹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은 별로 하지 못하는 반면 인플레만 올려놓는 결과가 되고
만다.

경기는 가급적 급격한 변동을 피하는 것이 좋다.

충분히 살아남을 잠재능력이 있는 기업이 극심한 불경기를 맞아 파산하고
실업자를 쏟아놓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경기가 순환하는 이치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 순환의 폭을 줄이는 것은
거시정책의 주요 목표이다.

물론 상황의 진단, 정책결정, 그리고 그 실제집행과 성과 사이에는 길고
짧은 시차가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대응하다가는 경기진폭을 줄이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경제의 평균적인 경기확장기간은 2년반 남짓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93년초가 경기의 바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피크"는 금년 중반께가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때 이번의 확장기는 금년말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의 엔고 덕분에 지난 몇개월간 수출증가는 20%를 넘고, 기업의 설비
투자나 자본재수입 열기도 아직 식을줄 모르고 있다.

수출과 설비투자가 하반기에 가서 어느정도 둔화될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대신 민간소비와 건설투자는 오히려 활기를 띨 전망이다.

문제는 96년이후에 경기가 급강하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외환 자본자유화의 추진으로 외자유입이 증가하면서 원화는 달러에 대해
완만한 절상을 보일 것이다.

게다가 일본 엔화는 미국의 고금리와 대미 무역흑자축소에 따라 금년
하반기이후 달러에 비해 약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것은 우리 원화에 대한 그간의 엔고가 크게 후퇴함을 가리킨다.

96년의 수출은 부진할 가능성이 크고, 기업설비투자는 아마도 수출보다
먼저 둔화될 것이다.

96년이후 경기둔화의 골이 얼마나 깊고 오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97년이면
또 선거가 다가온다.

선거에 앞서 정치적인 경기부양압력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경기와 물가를 조속히 안정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렇지못한 상태에서 경기부양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져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안정을 다지기 위해서는 역시 재정 통화운용등 총수요관리에 의존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금년들어 금융시장이 난기류를 보이고 있다.

돈이 많이 풀렸는데도 금리가 치솟고 있는 원인을 한국은행과 재경원의
손발이 맞지 않는데 돌리기도 한다.

통화당국 시중은행 기업들간에 신뢰관계와 예측가능성이 결여된 것이 문제
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현상은 기본적으로 금융자유화와 통화의 간접규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RP를 포함한 공개시장조작을 정상화하고, 한국은행의 재할인금리정책도
활용할때가 된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M2에 집착한 통화관리도 문제다.

금리자유화가 확대되고 여러 새로운 금융상품들이 출현하여 금융자산간에
이체가 빈번한때에 M2의 움직임만 보고 통화신용정책을 펼수는 없는 것이다.

높은 금리는 경제를 연착륙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중소기업을 걱정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금리수준보다도 빌릴수 있는지
여부가 더욱 절실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