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경제가 이룩해온 고도 성장을 놓고 세계각국은 이같은 찬사를
쏟아놓았다.
사실 우리경제의 고도성장은 기적에 가까왔고 아직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잠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도 남겨져 있다.
어떻게든 같이 나눠먹을 "파이"를 크게 만들어야한다는 성장우선의
논리에분배의 논리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온데 대한 불만이 노사관계에
잠재해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지난 87년 6월29일 "민주화 선언"을 계기로 노사분규가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도 따지고보면 오랫동안 억눌렸던 근로자들의 욕구가 일시에 분출한것이다.
이에따라 최근들어 노사분규가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노사모두가
해마다 분규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다.
또 분규로 인한 대량 구속.해고사태는 또다른 노사불신과 갈등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가져오는 뼈아픈 경험도 어두운 그림자로 꼽힌다.
그렇다고 더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을수만은 없다.
지금 우리는 안팎으로부터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로부터 새로운 변화의 격랑이 시시각각 밀려들어오고있다.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출범과 세계경제의 급속한 블럭화추세는 우리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국가단위의 전통적인 경쟁은 기업간의 대리경쟁으로 바뀌고있으며 국경없는
교역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아 나가면서 무한경쟁시대를 맞고 있다.
여기에서는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노동인력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구촌경제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노사문제의 발생과 해결도 한나라의 국경내에서만 이뤄지지않을
것"이라는 박영범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지적은 먼훗날이 아닌 눈앞의
현실이다.
내부적으로는 안보와 성장우선의 논리가 90년대들어 역사의 무대뒤로
퇴장해버리면서 그 빈자리에 세계일류를 지향하는 "경쟁력향상"과 과거의
갈등구조를 청산하고 새로운 한민족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사회통합"이라는
가치체계가자라나고있다.
합리주의와 자율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신세대가등장함으로써
노동현장의 세대교체도 이뤄지고있다.
이들은 근로의 대가로 임금만을 중시하지않으며 사업장을 자아실현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의식의 변화도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사협력시대의 새지펴을 열어가야하는 당위성은 이러한 시대변화의
상황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용자와 근로자는 신뢰와 대화를 바탕으로 과거의 상처와 앙금을 서둘러
치유하는것이 급선무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할 시점이다.
그것은 과거의 소모적인 노사대립을 지양하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정착
시키는데서 출발한다.
여기에는 "노사는 공동운명체"라는 의식과 함께 다가오는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는 작업이 뒤따라야한다.
"노사관계는 대등관계이며 진정한 협력은 노사간 "세력균형"에서 찾을수
있다"동반자로서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조우현 숭실대교수의 지적이다.
기업은 근로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한다.
나아가 근로자들이 일에 대한 기쁨과 보람을 갖고 창의력을 발휘할수있도록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는 일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근로자들도 과거 투쟁일변도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노사협력의 틀속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추구해야한다.
"사용자는 적이 아니다"는 인식을 깊이 새겨공존의 기틀을 다져야한다.
정부도 공정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노사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각종 제도적장치와 기법을 개발해나가야할 것이다.
변화하지않는 자는 살아남을수 없다.
기업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면 공동운명체로서의 노사는 협력과 공존의
틀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하는 에너지가 돼야한다.
우리의 산업현장도 진지한 반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지향점을 모색,
"새바람" "새물결"을 힘차게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만 제몫찾기의 "파이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낼수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