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에는 막부 말엽부터 총기제조소와 화약고가 있었는데,유신정부가
들어선 뒤에 그 시설을 확충하여 육해군의 무기제조소와 화약제조소,
그리고 보관 창고로 운용하고 있었다.

수송선에서 내린 한 소대의 병력은 그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총기와
탄환을 오사카로 이송하기 위해 파견되어 온 것이었다.

오쿠보는 만약에 가고시마의 사학교당 무리들이 봉기하여 내전으로
들어갈 경우 육해군의 무기와 탄환이 그곳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어서는
고스란히 반란군의 수중에 들어갈게 뻔해서 미리 반출하여 오사카
진대에 보관해 두는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육군성과 해군성에 조속히 그렇게 실행하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어둠이 깔리는 부두에 한 소대의 육군 병사들이 소대장의 인솔하에
조용히 내렸는데,그 뒤를 역시 육군 복장을 한 사람 둘이 따라 내렸다.

그들의 복장은 군복이기는 하되 장교인지 사병인지 잘 분간이 안되는
그런 것이었다.

군속 복장이라고나 할까.

그 두사람은 암살단의 대장인 나카하라와 그의 보좌격인 다카사키
지카아키였다.

그들은 항구를 빠져나가자 육군 소대에서 이탈하여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23명의 자객들은 그런 식으로 짝을 짓거나 혼자서,혹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가고시마로 침투하고 있었다.

오사카 진대에서 파견되어 온 소대의 소대장은 이튿날 육군
총기제조소의 소장과 함께 현청으로 오야마 지사를 찾아갔다.

정부의 명령서를 지사에게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소대장인 젊은 소위로부터 명령서를 받아 읽어본 오야마는 너무나
뜻밖의 내용에 놀라 온몸의 피가 머리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그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가고시마의 병기와 탄약을 오사카로 가져가다니,이런 법이 어디 있소?
이곳의 무기 제작소는 옛 사쓰마번 시절 시마즈 나리아키라 번주께서 세운
것이오. 그러니까 지금은 비록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소유권은 우리
가고시마현에 속한다고 봐야 하오. 마음대로 병기와 탄약을 딴 곳으로
옮겨갈 수는 없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엄연히 정부의 육해군 총기제조소,
화약제조소, 그리고 보관 창고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운용도 실제로
육해군에서 하고 있고요. 그런데 소유권이 가고시마현에 속하다니 말이
됩니까?"

총기제조소의 소장이 반박을 하자,젊은 소대장도 한마디했다.

"가고시마현은 정부와 별돕니까?"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