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탐구] (9) '서울'과 '지방'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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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년 5월.
83년부터 은행감독원장과 한국보험공사사장을 지내고 잠시 쉬고있던
송병순씨는 몇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방문자는 박성용금호그룹회장과 전남출신 국회의원등 광주.전남지역
유력인사.
이들이 송씨를 찾았던 이유는 한가지였다.
"광주은행을 맡아 달라"는 것.
처음 송씨는 요지부동이었다.
신용보증기금이사장 국민은행장 은행감독원장을 지낸 그였다.
이력에 비춰 광주은행장자리는 격에 맞지 않았다.
더구나 광주은행은 바로 몇달전 엄청난 외환사고를 내 경영이 크게
흔들리던 차였다.
당시 외환사고로 손해본 돈은 무려 3백44억원.납입자본금 5백억원에 육박
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고향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에게 광주은행장은 별로
매력이 없는 자리였다.
그리고 지난해.
광주은행은 금융계의 혁명으로 기록될만한 "사건"들을 잇달아 일으켰다.
최초의 다기능IC카드개발, 전산망의 다운사이징성공, 전자결재시스템가동
등.
뿐만 아니었다.
2백13억4천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감독원 경영평가에서도 A등급을 받았다.
불과 4년전 외환사고를 당했던 은행이라곤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광주은행직원들은 이런 급성장의 요인으로 송병순행장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외환사고의 후유증을 단기간에 극복하고 지방은행의 한계를 뛰어 넘을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송행장이란 인물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지방은행장-.
시중은행장들에 견줘보면 아직까지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움직일수 있는 돈(총수신)은 기껏해야 1조-5조원으로 대형시중은행(15조원
안팎)의 3분의1에 불과하다.
휘하의 점포도 많아야 1백여개다.
3백50여개의 점포를 거느린 시중은행장입장에서 보면 지역본부장쯤의
존재다.
그러나 이런 취약한 조건이 지방은행장들을 "절대자"로 부각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행장에 따라 은행색깔이 송두리째 달라지기도 한다.
"지역유지"에 만족하는 행장이 있는가하면 전국은행인 시중은행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행장도 존재한다.
홍희흠대구은행장도 그런 "존재"중의 한사람이다.
지난5월 한국통신주식 낙찰가조작사건으로 외환은행장자리가 공석이 됐을때
강력한 후보가 바로 홍행장이었다.
외환은행에서 전무를 지낸 이력과 능력으로 따져 홍행장의 친정복귀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홍행장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후보대열에서 일찌감치 제외
됐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현재 맡고 있는 대구은행을 떠나게 할수 없다는
것이 주인이었다.
지역출신들의 "로비"도 있었다고 한다.
대구은행의 내부사정을 살펴보면 그럴만도 했다.
"파벌싸움"의 상흔이 홍행장의 취임으로 가까스로 치유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지난92년 대구지역의 양대인맥인 경북고와 대구상고간의 "힘겨루기"는
결국 행장의 사임까지 몰고 왔었다.
이를 잠재운 이가 바로 홍행장이었다.
뿐만 아니다.
현금카드즉시발급제등 "은행중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첨단기법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런 이유로 송병순행장과 홍희흠행장은 성공한 지방은행장으로 꼽힌다.
오는 15일 능률협회로부터 나란히 "경영혁신상"을 받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다보니 일부 지방은행들에선 "중앙무대에서 통하는 외부행장을 모셔
봤으면"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두 행장이 경영혁신을 차질없이 수행할수 있었던 것은 서울에서의 활동력이
바탕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발이 넓은 행장이 자리잡는 것이 지방으로선 유리한게 사실이다.
서울에 집중된 금융현실을 고려하면 말이다.
그러나 중앙무대출신들이 가지는 한계도 적지 않다.
대부분은 이전 직장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중앙"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울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2-3일은 서울에서 지내는 지방은행장도 많다.
내부결속이나 지방토착화등은 어쩌면 두번째로 밀리고 만다.
특히 지방은행 특유의 파벌갈등을 극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지난 2월 연임에 실패한 성욱기충청은행장과 중도퇴진한 권태학대동은행장
이 그랬다.
"내년에 발족하는 통합시의 시금고는 지방은행들이 관리하는게 합당하다"
지난달 27일 10개 지방은행장들은 모임을 갖고 이렇게 발표했다.
지방은행장들은 매달 한번씩 이런 모임을 갖고 현안에 대해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한다.
전국에 점포망을 갖춘 시중은행과 경쟁하려면 "연대"하는게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연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방화시대이다.
따라서 지방은행장들의 한계극복노력은 "서울"을 흉내내는게 아니라
"지방"의 특성을 활용하는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
83년부터 은행감독원장과 한국보험공사사장을 지내고 잠시 쉬고있던
송병순씨는 몇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방문자는 박성용금호그룹회장과 전남출신 국회의원등 광주.전남지역
유력인사.
이들이 송씨를 찾았던 이유는 한가지였다.
"광주은행을 맡아 달라"는 것.
처음 송씨는 요지부동이었다.
신용보증기금이사장 국민은행장 은행감독원장을 지낸 그였다.
이력에 비춰 광주은행장자리는 격에 맞지 않았다.
더구나 광주은행은 바로 몇달전 엄청난 외환사고를 내 경영이 크게
흔들리던 차였다.
당시 외환사고로 손해본 돈은 무려 3백44억원.납입자본금 5백억원에 육박
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고향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에게 광주은행장은 별로
매력이 없는 자리였다.
그리고 지난해.
광주은행은 금융계의 혁명으로 기록될만한 "사건"들을 잇달아 일으켰다.
최초의 다기능IC카드개발, 전산망의 다운사이징성공, 전자결재시스템가동
등.
뿐만 아니었다.
2백13억4천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감독원 경영평가에서도 A등급을 받았다.
불과 4년전 외환사고를 당했던 은행이라곤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광주은행직원들은 이런 급성장의 요인으로 송병순행장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외환사고의 후유증을 단기간에 극복하고 지방은행의 한계를 뛰어 넘을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송행장이란 인물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지방은행장-.
시중은행장들에 견줘보면 아직까지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움직일수 있는 돈(총수신)은 기껏해야 1조-5조원으로 대형시중은행(15조원
안팎)의 3분의1에 불과하다.
휘하의 점포도 많아야 1백여개다.
3백50여개의 점포를 거느린 시중은행장입장에서 보면 지역본부장쯤의
존재다.
그러나 이런 취약한 조건이 지방은행장들을 "절대자"로 부각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행장에 따라 은행색깔이 송두리째 달라지기도 한다.
"지역유지"에 만족하는 행장이 있는가하면 전국은행인 시중은행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행장도 존재한다.
홍희흠대구은행장도 그런 "존재"중의 한사람이다.
지난5월 한국통신주식 낙찰가조작사건으로 외환은행장자리가 공석이 됐을때
강력한 후보가 바로 홍행장이었다.
외환은행에서 전무를 지낸 이력과 능력으로 따져 홍행장의 친정복귀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홍행장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후보대열에서 일찌감치 제외
됐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현재 맡고 있는 대구은행을 떠나게 할수 없다는
것이 주인이었다.
지역출신들의 "로비"도 있었다고 한다.
대구은행의 내부사정을 살펴보면 그럴만도 했다.
"파벌싸움"의 상흔이 홍행장의 취임으로 가까스로 치유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지난92년 대구지역의 양대인맥인 경북고와 대구상고간의 "힘겨루기"는
결국 행장의 사임까지 몰고 왔었다.
이를 잠재운 이가 바로 홍행장이었다.
뿐만 아니다.
현금카드즉시발급제등 "은행중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첨단기법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런 이유로 송병순행장과 홍희흠행장은 성공한 지방은행장으로 꼽힌다.
오는 15일 능률협회로부터 나란히 "경영혁신상"을 받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다보니 일부 지방은행들에선 "중앙무대에서 통하는 외부행장을 모셔
봤으면"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두 행장이 경영혁신을 차질없이 수행할수 있었던 것은 서울에서의 활동력이
바탕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발이 넓은 행장이 자리잡는 것이 지방으로선 유리한게 사실이다.
서울에 집중된 금융현실을 고려하면 말이다.
그러나 중앙무대출신들이 가지는 한계도 적지 않다.
대부분은 이전 직장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중앙"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울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2-3일은 서울에서 지내는 지방은행장도 많다.
내부결속이나 지방토착화등은 어쩌면 두번째로 밀리고 만다.
특히 지방은행 특유의 파벌갈등을 극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지난 2월 연임에 실패한 성욱기충청은행장과 중도퇴진한 권태학대동은행장
이 그랬다.
"내년에 발족하는 통합시의 시금고는 지방은행들이 관리하는게 합당하다"
지난달 27일 10개 지방은행장들은 모임을 갖고 이렇게 발표했다.
지방은행장들은 매달 한번씩 이런 모임을 갖고 현안에 대해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한다.
전국에 점포망을 갖춘 시중은행과 경쟁하려면 "연대"하는게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연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방화시대이다.
따라서 지방은행장들의 한계극복노력은 "서울"을 흉내내는게 아니라
"지방"의 특성을 활용하는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