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 70억달러 도입 .. IBRD 차관졸업 의의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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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개발사와 궤적을 같이해온 IBRD(세계은행)차관시대가 막을
내렸다.
철도청이 차량구입을 위해 1천4백만달러의 세은차관을 첫 도입했던 것은
지난62년.
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된 해였다.
그이후 32년간 70억6천6백만달러(약정액은 86억1천6백만달러)가 들어왔다.
분야별로는 교통/체신이 18억7천4백만달러(약정액기준 93년말현재)로 가장
많았으며(점유율 24.4%) <>금융 전대 17억4천6백만달러( " 22.8%) <>도시및
지역개발 15억8백만달러( " 19.7%) <>산업개발 9억3천만달러( " 12.1%)등
이었다.
1인당국민소득이 4천80달러를 넘는 나라엔 차관을 주지 않는다는 IBRD의
규정에 따라 한국은 지난 91년 차관졸업에 합의했다(세계에서 28번째로
졸업).
오일쇼크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남북통일이 되기전엔 IBRD의 차관을
받을 수 없도록 못을 박았었다.
이제는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위상이 달라진 셈이다.
그동안 세은차관으로 추진된 사업은 1백19개에 달하고 있다.
도로나 댐등 사회간접자본은 말할것도 없고 농어촌개발 의료시설 건설
등에 까지 IBRD의 지원을 받았었다.
<>경주보문단지(2천5백만달러 74.1) <>가락동농수산물시장(5천만달러
82.4) <>팔당댐상수도시설(9천5백만달러 85.3) <>낙동강하구언건설(7천
8백50만달러 83.10)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개별건수도 도입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지난83년11월에 도입된 구조조정
2차자금 3억달러였다.
구조조정자금은 경제운용능력이 뛰어나나 외환사정이 어려운 국가에 대해
사용처를 정하지 않은채 공급하는 자금이다.
세은차관은 자체신용능력이 없던 시절 믿을만한 ''돈줄''이었다는 점에서
한국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32년동안 도입된 세은차관중 아직도 상환되지 않은 금액이 지난6월
말현재 20억4천4백만달러에 달할 정도다.
이는 전체 공공차관(66억5천3백만달러)의 30.7%를 차지하는 수준이며
상업차관잔액(93년말 12억달러)보다도 1.7배나 많은 것이다.
또 직접적인 자금지원 외에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높여 다른 공공차관이나
상업차관도입을 쉽게 하는 외부효과도 나타냈다.
기술및 정책지원효과도 컸다.
IBRD는 그동안 7차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만들고 집행할때 재정 금융
환율 임금 통상 조세정책 등에 대해 전반적인 조언을 해왔다.
교육훈련과 사업평가능력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
세은산하의 경제개발원(EDI)에서 관계자들의 교육을 맡은것외에 모든
차관의 2~3%를 훈련및 용역비로 책정, 해외연수와 외국전문가의 국내초청
등의 사업을 가능케 한게 그것이다.
이제는 남에게 얻어온 돈으로 성공한 만큼 베푸는 ''지혜''가 필요한 때가
됐다고 할수 있다.
<홍찬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8일자).
내렸다.
철도청이 차량구입을 위해 1천4백만달러의 세은차관을 첫 도입했던 것은
지난62년.
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된 해였다.
그이후 32년간 70억6천6백만달러(약정액은 86억1천6백만달러)가 들어왔다.
분야별로는 교통/체신이 18억7천4백만달러(약정액기준 93년말현재)로 가장
많았으며(점유율 24.4%) <>금융 전대 17억4천6백만달러( " 22.8%) <>도시및
지역개발 15억8백만달러( " 19.7%) <>산업개발 9억3천만달러( " 12.1%)등
이었다.
1인당국민소득이 4천80달러를 넘는 나라엔 차관을 주지 않는다는 IBRD의
규정에 따라 한국은 지난 91년 차관졸업에 합의했다(세계에서 28번째로
졸업).
오일쇼크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남북통일이 되기전엔 IBRD의 차관을
받을 수 없도록 못을 박았었다.
이제는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위상이 달라진 셈이다.
그동안 세은차관으로 추진된 사업은 1백19개에 달하고 있다.
도로나 댐등 사회간접자본은 말할것도 없고 농어촌개발 의료시설 건설
등에 까지 IBRD의 지원을 받았었다.
<>경주보문단지(2천5백만달러 74.1) <>가락동농수산물시장(5천만달러
82.4) <>팔당댐상수도시설(9천5백만달러 85.3) <>낙동강하구언건설(7천
8백50만달러 83.10)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개별건수도 도입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지난83년11월에 도입된 구조조정
2차자금 3억달러였다.
구조조정자금은 경제운용능력이 뛰어나나 외환사정이 어려운 국가에 대해
사용처를 정하지 않은채 공급하는 자금이다.
세은차관은 자체신용능력이 없던 시절 믿을만한 ''돈줄''이었다는 점에서
한국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32년동안 도입된 세은차관중 아직도 상환되지 않은 금액이 지난6월
말현재 20억4천4백만달러에 달할 정도다.
이는 전체 공공차관(66억5천3백만달러)의 30.7%를 차지하는 수준이며
상업차관잔액(93년말 12억달러)보다도 1.7배나 많은 것이다.
또 직접적인 자금지원 외에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높여 다른 공공차관이나
상업차관도입을 쉽게 하는 외부효과도 나타냈다.
기술및 정책지원효과도 컸다.
IBRD는 그동안 7차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만들고 집행할때 재정 금융
환율 임금 통상 조세정책 등에 대해 전반적인 조언을 해왔다.
교육훈련과 사업평가능력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
세은산하의 경제개발원(EDI)에서 관계자들의 교육을 맡은것외에 모든
차관의 2~3%를 훈련및 용역비로 책정, 해외연수와 외국전문가의 국내초청
등의 사업을 가능케 한게 그것이다.
이제는 남에게 얻어온 돈으로 성공한 만큼 베푸는 ''지혜''가 필요한 때가
됐다고 할수 있다.
<홍찬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