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북핵문제로 북한과의 경제교류에 극히 유보적 자세를 견지해
왔던 정부는 과거 어느때 보다도 과감한 교류의사를 표방하고 나섰다.

이미 8.15경축사를 통하여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
공동체"의 건설을 위한 협력의지를 천명했던 김영삼대통령은 APEC(아.태
경제혁력체)순방을 앞두고 행한 연설에서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위한 일련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대통령 자신이 연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와같은 전향적 정책전환의
직접적 계기는 북한의 핵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데
있다.

그 결과 "미.북"및 "일.북"간의 관계 또한 급속하게 개선될 전망이다.

러시아 역시 일련의 고위층 인사들을 북한에 파견하여 단절된 정치 경제
관계의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며 중국은 북한에 대한 후견자의 입지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기존의 대북강경자세를 유지할 경우 북한의 개방
물결은 한국을 비껴 지나갈 위험을 안고 있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주변의 급속한 상황변화에 수동적 사후적 대응보다는
적극적 참여를 통하여 북한의 개방을 촉진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추가요인이 대북정책변화를 촉진시켰을
것이다.

그 하나는 김일성사후 대북정책기조가 불투명하고 정부의 정책이 혼선을
보이면서 이에대한 국민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일성사후 대북정책에 관한 여론 조사결과 만20세이상 국민의 77.4%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롭게 등장하게 될 김정일체제와 그에 따른 북한의 내부변화를 고려한
대북정책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다른 하나는 3차7개년 계획기에 접어들면서 분명하게 드러난 북한의
극심한 경제적 정체현상이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자체의 한계와 모순에
기인하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간의 체제경쟁이 종료된 상황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수동적
방어적 전략보다는 적극적 대승적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향후의 대북정책은 "협력을 통한 포용"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었다.

남.북한간의 경제교류를 확대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유관부처간의 정책조정능력을 제고시켜야
한다.

북핵의 투명성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생물학 무기나 화학무기는 그 살상력에 있어 핵무기이상의 가공스러운
위력을 갖고 있다.

이미 미 클린턴 대통령은 이와 관련하여 연초에 있었던 브뤼셀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담에서 화생방무기(ABC Weapon)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역외지역에 대해서도 NATO의 병력을 투입할 것임을
강력히 요구한바 있다.

따라서 향후 이러한 문제들이 제기될 경우 정부가 자의건 타의건간, 남북한
경제교류를 경제외적 문제해결을 위한 레버리지(Lcvcrage)로 활용할 경우
남북한 관계는 다시 냉각될 소지를 안고 있다.

가능한한 경제교류와 여타 부문과의 "연계정책"은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북한 관계는 과거와 같이 부단한 "희망과 좌절"의
악순환속에서 표류할 위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의 효율성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나아가서 유관부터간에 정책의
조정능력을 제고시킬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실 북한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부단한 청책의 혼선과 표류는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을 결정적으로 증폭시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북경제교류가 확대되는 경우에도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이다.

둘째 국내 민간기업의 대북진출을 촉진시키기 위한 일련의 제도적 조건을
마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무역의 경우 결제방식, 무역분쟁의 해소장치를 강구하고 직접투자의 경우
투자보상, 이중과세 방지, 과실송금및 내국인대우등과 같은 법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당국이 경제개방을 원한다면 그러한 장치를 만들어가는데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북한이 경제교류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있어서 얼마만큼 적극적 자세를 견지하는가는 바로 북한의
개방의사를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셋째 정부는 가능한 한 대북진출과 관련된 국내 민간기업의 창의력과
책임의식을 존중해아 하며, 기업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효율적인 "정보의
수집 전달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는 북한에 대하여 아는 바가 별로 없으며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국, 특히 러시아의 북한경제전문가들을 십분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해 볼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간 경제관계의 확대심화는 결국 북한의 "사회적"개방을 촉진시키는
외부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국가간의 역내협력을 자극시킴으로써
세계경제의 지역화가 유발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민족의 생존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초석이 될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