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문화] (29) 교통 이기주의 극복 .. 임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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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삼진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옆차선을 달리던 자동차가 끼어들기 위해 양보를 해달라고 방향지시등을
깜작인다.
"감히 어딜!"하면서 오히려 액셀레이타를 힘껏 밟아 이를 방해한다.
잠시후 자신이 끼어들어야 할 상황이 됐다. 다른 차 운전자가 조금 전의
자기처럼 양보를 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거 양보좀 해주면 어디 덧나나?"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앞세운다.
두개의 자를 가지고 편한대로 사용하는 교통이기주의의 모습이다.
모든 것을 판단할 때 "내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운전자에게
양보는 무능하고,남들이 나한테 양보를 해주는 것은 당연한 미덕이다.
교통이기주의는 우리의 도로를 스트레스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있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양산하며 우리의 교통문화를 황폐화시킨다.
교통의식과 관련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많은 운전자들이 자기는
법규도 잘 지키고 있는데,남들 때문에 교통문화가 엉망이 되었다고
남을 탓하고 있다.
또 내 운전 문화점수는 다른 운전자보다 월등히 높다고 응답한다.
교통사고는 "어쩔수 없는"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 탓인 인재다.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와의 관계에서 "나"를 중심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운전자는 시시각 변화하는 교통상황을 "나에게 유리한"쪽으로
해석한다.
"바쁘니까 내가 먼저"혹은 "평소에도 괜찮았는데 뭐"같은 안이한 판단은
개인적으로는 안전의 적신호이고 사회적으로는 횡포와 폭력이다.
마땅히 브레이크에 발을 얹어야 할 곳에서도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게
되니 사고가 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국도나 지방도의 교차로에서 일어나는 정면충돌사고,중앙선 침범사고는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에게 비키라고 클랙슨을 울려대는 폭군의
모습처럼 교통 이기주의는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운전대만 잡으면 마음이 급해지고 초조해지는 걸 어떨헤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특별한 방법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안전운전을 길들이는 방법
뿐이다.
출발전에 알맞는 운행 계획을 세우는 것,또 운행시간을 충분히 잡는
것이 그 방법이다.
이런 준비는 여유와 양보심을 길러 준다.
주말에 내 차로 결혼식장에 가면서 평소처럼 출발하는 사람에겐 이미
교통사고 귀신이 붙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분쯤 여유를 갖고 출반하거나 과감하게 지하철로 발길을 돌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노력으로 여유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운전을 훨씬 부드럽고 안전한
것으로 만드는 길이다.
하지만 교통이기주의의 극복을 개인적인 노력에만 맡길 수는 없다.
각종 제도나 행정의 통제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반해야 한다.
난폭운전에 대한 보다 강력한 법적,제도적 통제 장치가 있어야만
이기주의를 누그러뜨릴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지되고 있는 우리의 통제장치는 너무도 느슨하다.
운전자를 지나치게 두둔하는 교통사고 처리특례법이 버티고 있는데다,
난폭운전자나 법규위반자에 대한 제재도 약하다.
교통이기주의가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과 사회적인 차원의 제도 개혁이 맞물릴때 우리의
교통문화는 훨씬 인간적으로 바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9일자).
옆차선을 달리던 자동차가 끼어들기 위해 양보를 해달라고 방향지시등을
깜작인다.
"감히 어딜!"하면서 오히려 액셀레이타를 힘껏 밟아 이를 방해한다.
잠시후 자신이 끼어들어야 할 상황이 됐다. 다른 차 운전자가 조금 전의
자기처럼 양보를 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거 양보좀 해주면 어디 덧나나?"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앞세운다.
두개의 자를 가지고 편한대로 사용하는 교통이기주의의 모습이다.
모든 것을 판단할 때 "내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운전자에게
양보는 무능하고,남들이 나한테 양보를 해주는 것은 당연한 미덕이다.
교통이기주의는 우리의 도로를 스트레스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있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양산하며 우리의 교통문화를 황폐화시킨다.
교통의식과 관련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많은 운전자들이 자기는
법규도 잘 지키고 있는데,남들 때문에 교통문화가 엉망이 되었다고
남을 탓하고 있다.
또 내 운전 문화점수는 다른 운전자보다 월등히 높다고 응답한다.
교통사고는 "어쩔수 없는"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 탓인 인재다.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와의 관계에서 "나"를 중심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운전자는 시시각 변화하는 교통상황을 "나에게 유리한"쪽으로
해석한다.
"바쁘니까 내가 먼저"혹은 "평소에도 괜찮았는데 뭐"같은 안이한 판단은
개인적으로는 안전의 적신호이고 사회적으로는 횡포와 폭력이다.
마땅히 브레이크에 발을 얹어야 할 곳에서도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게
되니 사고가 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국도나 지방도의 교차로에서 일어나는 정면충돌사고,중앙선 침범사고는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에게 비키라고 클랙슨을 울려대는 폭군의
모습처럼 교통 이기주의는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운전대만 잡으면 마음이 급해지고 초조해지는 걸 어떨헤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특별한 방법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안전운전을 길들이는 방법
뿐이다.
출발전에 알맞는 운행 계획을 세우는 것,또 운행시간을 충분히 잡는
것이 그 방법이다.
이런 준비는 여유와 양보심을 길러 준다.
주말에 내 차로 결혼식장에 가면서 평소처럼 출발하는 사람에겐 이미
교통사고 귀신이 붙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분쯤 여유를 갖고 출반하거나 과감하게 지하철로 발길을 돌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노력으로 여유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운전을 훨씬 부드럽고 안전한
것으로 만드는 길이다.
하지만 교통이기주의의 극복을 개인적인 노력에만 맡길 수는 없다.
각종 제도나 행정의 통제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반해야 한다.
난폭운전에 대한 보다 강력한 법적,제도적 통제 장치가 있어야만
이기주의를 누그러뜨릴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지되고 있는 우리의 통제장치는 너무도 느슨하다.
운전자를 지나치게 두둔하는 교통사고 처리특례법이 버티고 있는데다,
난폭운전자나 법규위반자에 대한 제재도 약하다.
교통이기주의가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과 사회적인 차원의 제도 개혁이 맞물릴때 우리의
교통문화는 훨씬 인간적으로 바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