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에 새 물꼬는 터지는가.

김영삼대통령이 7일 경제계인사와의 만찬에서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활성화할 단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정부가 9일 통일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기업인 방북허용등 1단계 대북경협 완화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1단계조치"는 그동안 기업들의 북한행을 가로막아 온 우리측의 걸림돌
들을 우선 치우는 내용으로 돼 있다.

<>기업인들의 직접 방북 <>설비반출및 기술자북한 체류 <>대북무역사무소
설치 <>건당 5백만달러이하의 투자허용 등이 그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조치들이다.

우리정부가 앞서 물꼬제거에 나섬에 따라 이제 남북경협의 "공"은 북한
쪽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동안 재계총수들이 북한으로부터 몇차례에 걸쳐 방북초청을 받고도
정주영 현대명예회장(89년) 김우중 대우그룹회장(92년)등 2명을 빼고는
북한에 발을 들여놓지조차 못했었다.

삼성 럭키금성 코오롱 고합 대농 미원등 대기업그룹들마다 "도상 북한
진출계획"을 수차례에 걸쳐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음은 물론
이다.

북한과 어렵사리 접촉해 받아놓은 총수 및 관련임직원들의 방북 초청장이
번번이 휴지조각으로 바뀌기도 했다.

우리정부가 북한핵문제 등을 들어 "선 핵문제 타결 후 경협 허용"이라는
원칙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핵"이 본격 타결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정부가 1차로
방북허용등 1단계 걸림돌제거조치를 취함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게 됐다.

북한이 우리기업인들을 초청하기만 한다면 자유로운 북한방문에 별 문제가
없게된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기업들의 북한내 무역사무소설치.위탁가공 활성화를 겨냥
하는 조치와 함께 제한적이나마 투자까지도 허용하는 대북경협 완화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정부는 이번의 조치로 기업들의 대북경협에 본격적인 토대가 마련될 경우
<>투자보장 <>2중과세방지 <>청산계정등 실질적인 내용을 담은 2,3단계의
추가적인 경협완화조치를 내놓는다는 복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일단 기업인들의 대거 방북러시현상이 일 전망이다.

이미 상당수 기업들이 총수급의 방북초청장을 받아 둔 상태인데다 북한이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로 산업환경을 정비할 경우 투자대상지로 각광받을 수
있는 나름의 장점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저임노동력을 갖춰 이미 북에 진출해있는 재일조총련계 기업을
통해 신사복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검증받은 상태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기업으로선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달리 언어와 문화등에서
동질성을 갖고있는 북한이 투자대상지로서 상당한 매력을 안겨줄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도상분석"에서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다.

북한의 폐쇄적인 사회통제가 바뀌지않는 한 자유로운 북한노동력의 활용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북한이 어디까지 한국기업들에 문을 열어줄 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북한이 지난 92년 나진.선봉일대를 중국식 자유무역지대로 선포한 뒤
한국 기업인들에 대한 "초청공세"를 벌여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이 한국기업의 투자를 희망하는 나진.선봉지역은 전력 통신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시설이 크게 낙후된 상태여서 별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우리기업들은 대부분이 남포 해주등 평양인근지역이나 휴전선부근지역을
선호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경제기획원 관계자는 "정부의 기업인 방북 해금조치로 단기적으로는 재계
인사들의 북한행이 러시를 이루겠지만 그것만으로 남북경협이 과열조짐을
보인다거나 하는 속단을 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공을 건네받은 북한이
실질적인 투자환경정비에 나서지않는 한 오히려 북에 실망하는 한국기업인
만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학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