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사회만이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늘부터라도 연공서열에
구애받지 말고 대담하게 발탁하는 인사제도를 운영하라"

지난달 31일아침 청와대. 김영삼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
및 수석비서관들과 조찬을 함께 하면서 이렇게 지시했다.

다음은 대통령 지시에 대한 과천경제관료들의 반응.

A국장(경제기획원) =발탁인사요? 현실도 모르면서 대통령이라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겁니까?

B과장(상공자원부) =그런 지시를 한 대통령이 어디 김대통령뿐입니까?
관료출신이 아니니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거겠죠.

C과장(재무부) =내 신세를 보세요. 발탁승진은 선의의 피해자를 만드는
조치일 뿐입니다. 10여년전 사무관생활 5년만에 서기관에 발탁승진됐을
때는 하늘을 날 것같은 기분이었지요.

그런데 빨리 승진했다는 죄로 줄곧 외부기관으로만 떠돌아야 했습니다.
올초에야 본부로 돌아왔지요.

D사무관(노동부) =진작 그렇게 지시했어야죠.

대통령의 "연공서열 혁파" 지시에 대한 과천의 반응은 이렇게 "기대반
회의반"이다. "회의반"은 B.C과장의 지적처럼 시행착오의 되풀이를
우려하는 소리다.

과거 시도됐던 발탁인사의 명과 암을 연대별로 추적해 보자. 먼저
70년대. 태완선부총리가 취임한 경제기획원에 "인사혁명"이 잇달아
일어났다.

엊그제까지 사무관으로 있던 주니어관료가 어느날 갑자기 선임부서의
과장자리에 임명돼 앉는다.

"어쩌다 생긴 일이겠거니" 하는데 또 비슷한 인사가 몇달 뒤 재현된다.
기획원이 술렁거리게 된 건 당연했다.

이내 태부총리의 인사스타일을 놓고 "수혜자"와 주위동료들사이에
"해석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능력이 제대로 인정되는 선진적인 인사"라고 했고 다른 한쪽은
"완전한 정실인사"라고 했다.

기획원의 여론은 "정실론"으로 기울었다. 태부총리가 물러나면서
발탁인사는 흐지부지돼 버렸다.

다음 80년대의 예. 역시 경제기획원에서 문희갑(전국회의원)이라는
"발딱(발탁)스타"가 탄생한다.

유신말기 경제기획원 예산과장에서 국방부 예산편성국장으로 옮겨
가면서 그의 "썩세스 스토리"는 시작된다.

최동규 당시 기획원 예산실장(전동자부장관)이 국방부차관으로 승진.
전보될 때였다. 그는 함께 옮겨갈 국장급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대상자들은 다들 손을 내저었다.

최실장은 "쓸만한 친구"라고 여겼던 문과장(당시)에게 쏘삭거렸다.

"1계급 특진시켜 줄테니 같이 국방부로 가지않겠냐"고. 국방부에서
능력발휘를 한 그는 82년 45세의 나이에 경제기획원 예산실장(1급)으로
금의환향한다.

1급보직에 앉기에는 나이가 적어 "직무대리"로 보직을 맡는 사상초유의
기록과 함께. 이후 차관.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승승장구했다.

문씨의 발탁출세는 그 계기가 타부처 전보였다는 점에서 "정실시비"는
별로 일지 않았다.

그 대신 부처이동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만큼 "문희갑식
발탁인사"는 1회성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이어 90년대. 건설부에서 L씨가 "고시동기 선두주자"로 발탁 승진을
거듭한다.

요직인 토지국장자리에 앉게됐을 땐 "너무 튀는 인사아니냐"는
쑥덕공론이 일었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은 "능력에 걸맞게 올랐을 뿐 무슨 연줄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는게 정평이었지만. 그런데 웬 걸. 92년 한보그룹
부정사건이 터지면서 그는 도중하차한다.

몇 푼의 돈을 받아썼다는 죄목으로. 주위에서는 그가 "누군가의
투서질에 의해 애꿎게 희생당했을 것"이라고들 했다.

아까운 사람을 너무 일찍 승진시켜 오히려 "적"만 많이 만들어줬다는
게 과천의 중론이기도 했다.

사실 L씨의 "희비극"은 웬만한 부처에서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는
케이스다.

"특정 장관때 잘 나가던 관료는 장관이 바뀌면서 대개 망가지고 말더라.
그게 관료사회의 풍토다.

확실한 원칙이 없이 이뤄지는 발탁인사는 그래서 않는만 못하게 된다"
는 게 과천의 경험칙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통령의 "10.31 지시"는 한차례의 립서비스로 끝나고
말건가. 과거의 시행착오나 경험칙을 뒤엎을 묘안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그 대안으로 기업형 업무평정제도의 도입을 제시한다. 물론
정부 일각에서도 이같은 기업형 인사의 제도화가 추진됐었다.

지난 6월이었다. 동료들간에 까지도 상호 능력을 평가토록 하는 등
"객관적 잣대"를 넓혀 발탁인사가 제도화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급자가 경력 근무평점 교육성적등을 기계적으로 매겨
온 연공인사에서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을 거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청와대 신경제회의에까지 올릴 예정으로 돼있던 이 제도안이
돌연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너무 혁명적이다"는 내부 반발때문이었다고 한다.

변화에 알레르기반응을 보인 다수 관료들에 의해 혁명은 불발로 끝나고
만 셈이다.

관료들에겐 "불안한 변화"보다는 "무사한 현실안주"가 더없이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변혁기에는 현재 취하고있는 방식이 가장 위험하다.

그것은 잘못된 것을 그대로 방치해버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주의회 직할 "미래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중 한
구절이다.

어디 바다건너 나라 지방정부에만 통용되는 얘기일까.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