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간 제휴관계를 유지하며 20%의 지분을 갖고있던 영국의 로버
자동차를 독일의 BMW에 사실상 빼앗겨 버린 것이다.
BMW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이지만 외형적
으로는 생산대수가 혼다의 절반, 매출액은 3분의1을 조금 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BMW가 혼다를 제치고 로버주식의 80%를 브리티시에어로스페이스(BAe)
에서 사들였다.
방심한 틈에 일격을 당한 혼다는 물론 세계의 자동차업계가 다시한번
BMW를 주목한 것은 당연하다.
BMW의 로버매수과정을 들여다보면 이회사의 기민한 의사결정시스템을
알수 있다.
지난해 8월 BAe는 영국정부와 맺었던 로버주식의 최소보유기간(5년)이
지나자 일본의 혼다에 주식을 매수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했다.
그러나 현지에 자회사를 갖고 있을 뿐아니라 영국기업매수로 생길수 있는
반발을 걱정했던 혼다는 BAe의 의사타진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에서 BMW는 몇번이고 BAe측과 접촉, 로버주식매입을 시도했지만 이
교섭에서도 뚜렷한 응답이 오고가지 못했다.
해가 바뀐 지난1월21일 혼다는 로버주식의 47.5%까지를 인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틀전인 19일 혼다자동차가 로버주식의 과반수이상의 가질 의사가
없음을 감지한 BMW는 단열흘만에 로버를 사들여 혼다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뮌헨과 런던을 오가며 BMW의 대표는 로버의 이사회와 접촉하고 노동조합의
간부들과도 공장한구석에서 얘기를 마무리짓는 "작전"을 펼쳐 보인 것이다.
BMW가 로버매수에 보인 적극성은 90년대 유럽자동차시장의 판도변화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출발한 것이다.
지난 80년대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들은 유럽시장에서 경쟁적으로 생산
능력의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들어 유럽시장은 만성적인 공급과잉을 보이고 있다.
92년 유럽4개국(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의 자동차생산대수는 1천
2백만대정도였는데 반해 판매대수는 약1천1백만대였다.
여기에 일본업체들의 현지생산분을 합치면 금세기말에 가서 유럽전체에서
연간1백50만대정도의 공급과잉이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만큼 유럽시장에서의 코스트경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다.
시장이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정규모의 생산대수를 갖지 못할 경우
코스트경쟁에서 승리할수 없으며 BMW에 로버매수는 그 해답이었다.
지난해 BMW의 생산대수는 53만대, 로버의 생산대수는 약45만대였다.
전격적인 로버매수로 생산대수는 1백만대를 넘어서게 됐다.
더구나 BMW는 고급세단에서, 로버는 소형차나 4륜구동차에 장점을 갖고
있다.
양사의 차종은 시장에서 거의 경쟁하지 않는 차종이다.
BMW는 로버공장에서 기존의 로버차종을 계속 생산하게 되고 전체적인
생산능력의 확대로 부품구입등에 있어서 규모의 이익을 노릴수 있게 됐다.
유럽에는 전장부품의 보쉬나 변속기의 게트락등 독립성이 강한 부품기업이
있어 거래량이 늘어나면 코스트다운 효과가 크다.
BMW와 로버간의 부품공동화등이 진행되면 앞으로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BMW는 이전부터 독창적인 면이 톡톡 튀는 회사였다.
자동차를 만드는데 있어서는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차별성이 강조된다.
벤츠가 뒷자석의 승차감을 강조할때 BMW는 운전자를 중심으로 자동차를
개발했다.
벤츠의 엔진이 힘과 속도에 치중할 때 BMW는 엑셀레이터를 밟는 순간의
반응과 같이 체감적인 데이터에 신경써왔다.
로버를 매수하기전까지 BMW는 어떤 자동차회사나 정부기관등과도 자본관계
를 맺지 않은 철저한 독립적 회사였다.
복잡한 국제자본제휴가 일상적인 자동차업계에서 보기드문 존재였다.
그가운데서 독창적인 경영전략은 BMW를 30년넘게 연속흑자기업으로 남아
있게 해왔다.
< 박재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