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도 수입하는 마당에 돈은 왜 못들여오나" "돈을 계획없이 수입해서
물가가 오르고 환율이 떨어져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6월초 경제부처차관들이 벌인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한쪽에선 값싼 해외자금을 하루빨리 들여와 고금리에 허덕이는 국내기업
에 활력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다른한쪽에서는 돈수입이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무작정 가져다
쓰면 물가와 환율이 악화돼 이익이 없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한국이 처한 자본자유화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만큼
간단치않은 과제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가간 자금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자본자유화는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기업의 해외자금조달,개인의 해외증권직접투자,국내주식및 채권에 대한
외국인투자, 직접투자등을 망라한다.

수출입업체들이 원화로 수출입대금을 결제하는 원화국제화도 한쪽
가지다. 돈이 국경에 제한을 받지않고 수익률이 높으면 세계 어디로든지
흘러다닐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자본자유화는 지난84년 외국인전용수익증권의 허용으로 시작됐다.
국내주식시장에 대한 간접개방이 첫출발이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주식시장
개방은 외화자금조달 차원에서 추진됐을뿐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했다.
여건도 의지도 아직 성숙되지 못했다.

자본자유화의 틀이 마련된 것은 지난92년9월 외국환관련법규를 대폭 개정
하면서 부터이다. 외환관리체계가 포지티브시스템에서 네거티브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관리대상목록을 설정한뒤 이것외에는 모두 털어 "자유화"라는 골격을
잡았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의지는 많이 높아졌으나 여건은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후 지난해 6월 마련된 "금융시장개방방안(블루프린트)"을 계기로
자본자유화는 한차원 높아졌다.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자본자유화가 종합적인 시간표에 맞춰 시행되도록하는 청사진이었다.

오는 97년까지 채권시장개방 원화국제화 상업차관도입등 여태까지의
금기사항들이 모두 포함됐다. 이에따라 작년하반기부터 자본자유화는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중 외국인직접투자는 그 이전부터도 여타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화가 빨리 진행됐다. 지난 84년7월에 이미 외국인투자업종을
네거티브시스템으로 변경,제한업종으로 열거되지 않는한 모두 허용하기
시작했다.

91년3월엔 자동신고제를 도입했으며 투자제한 업종을 몇차례 풀어 오는
97년까지 10개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대해 부분적으로라도 외국인
투자를 허용키로 했다. 이에따라 외국인투자자유화율은 97년에는 95.3%로
높아지게 됐다.

국내기업의 해외투자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지난 1월에 마련된
"해외직접투자활성화방안"으로 14개업종을 제외하곤 모든업종의 해외
진출이 가능하게 됐다.

절차도 간소화돼 건당 30만달러이하의 소액투자는 주거래은행의 인증만
받으면 나갈수 있게 됐다. 보험 은행 증권등 기관투자가는 자산운용을
위해 해외에서 부동산을 살수 있게됐다.

증권시장개방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지난84년 처음으로 외국인전용
수익증권이 발행된이후 88년엔 "자본시장국제화중기계획(89~92)"이
마련돼 증시개방 일정표를 제시했다.

이에따라 외국증권사 지점과의 합작증권사 설립이 허용되고(91년)
외국인이 국내상장주식을 직접 살수 있게 됐다(92년). 증소기업이
발행한 전환사채(CB)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도 허용됐다.

증시개방과 함께 국내인의 해외증권투자에 대한 제한도 빠른 속도로
풀어졌다. 지난 85년부터 기관투자가에 한해 해외증권투자가 허용된데
이어 작년 5월에는 해외투자펀드가 설정돼 일반인들의 간접투자길이
열렸다. 올7월부터는 개인도 직접 해외증권을 살수 있게 됐다.

오는 9월엔 블루프린트에서 제시됐던 것중 아직 시행되지 않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환제도개혁방안"이 발표된다. 블루프린트가 얼개만을
밝힌 "청사진"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방안은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망라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관리법령의 정비가 길을 닦는 작업이었다면 블루프린트는 시동을 건
상황이고, 곧 나올 외환제도개혁방안은 가속페달을 밟는 모습이라고
비유할수 있다.

하지만 마음껏 가속도를 내기엔 짊어져야할 부담과 장애가 너무 많다.
국내외금리차를 보고 밀려들어올 해외자본을 충격없이 처리할만큼
준비가 돼있지 않아서이다.

자본자유화조치로 오는 97년까지 예상되는 해외부문 통화증가규모는
연간 줄잡아 8조원에서 크게는 1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총통화(M2)의 40~60%에 달하는 규모다. 해외자본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면 통화가 늘어 물가를 자극하게 될것은 분명하다. 원화가 절상을
지속해 대외경쟁력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그러나 통화관리와 거시경제변수조정의 독자성이 위축돼 손을쓸 도리가
없게된다. 사전에 충격을 완충시킬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지 않으면
자본자유화는 상처만 주게된다는 얘기다.

그 유일하고도 불가피한 장치가 물가안정이다. 일부 남미국가들이 자본
거래를 자유화한뒤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이유도 바로 물가를 안정시켜
놓지 못해서였다.

한국엔 8%대의 성장이 "적정"하다고 인식할만큼 성장집착증이 만연해있고
재정을 긴축할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거의 없다.

물가는 구조적으로 안정이 어렵게 돼있기도 하다. 온통 걸림돌뿐인
셈이다. 뼈를 깎아내는 긴축의 고통을 감내할수 있도록 모든 여건이
정비돼야만 자본자유화의 즐거움을 향유할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자본자유화는 "총체적 대비"를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는 결론
외엔 없다. 지금부터 물가 환율 재정등 모든 거시경제변수를 "안정"으로
돌리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하겠다.

<홍찬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