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잘아는 친지로부터 도저히 들어줄수 없는 부탁을 받았을때 정중하게
그 부탁을 거절하기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바로 그 앞에서 매정스럽게 안되는 일이라고 잘라버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되는 것처럼 허풍을 떨수도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았다"든지 "생각
또는 고려를 해보겠다"고 반긍정적인 단어를 쓰면서 거절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아주 외교적인 수사용어를 쓰는 사람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최상의
가능성을 바람에 띠우면서도 내심으로는 거절하는 수법도 사용한다.

그러나 딱한 사정이 있어 부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대답을 희망적인 약속
으로 생각하고 막상 일이 성사되지 않았을때에는 그 사람을 겉과 안이
다른 못믿을 사람으로 매도해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큰 사회문화속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의 큰 암적인 문제는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때와 장소와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같은 사안이라도 말을 다르게 하는 사람들인것 같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수박처럼 겉과 속이 다르더라도 쉽게 판별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시류를 잘타고 언제나 좋은사람 넓은사람으로 인정받아서
존경도 받게된다. 이렇게 되기위해서는 눈치도 빨라야되고 재치도 있어야
되고 연극배우의 소질도 키워야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난을 당했는지 모른다. 직언을 하거나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순진하고 세상물정을 모르고 아직 수양이 덜 된 사람으로 분류되어
악화가 구축하는 양화처럼 전락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진실이
대접받는 정도는 학교에서 배운지식과는 거리가 크게 있어 보인다.

오늘 오랜만에 귀국한 미국에서 사는 친구의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순진하구나 하는 상념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