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일어난다. 1-2월의 상반기인사때와 7-8월의 하반기인사때다.
한번 인사때마다 전체의 4분의1가량이 움직인다. 대형은행의 경우 줄잡아
2천5백여명이 이사짐을 꾸린다. 물론 같은 지역에서 옮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유배생활"을 떠나는 사람도 상당수다. 지방
발령을 받는 경우 태반은 "두집살림"을 차린다. 그만큼 어려움이 많지만
은행원이라면 어차피 두세번은 겪어야할 일이다.
H은행L지점장(47). 그는 한달에 두번꼴로 가족을 만난다. 지난 3월만해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서울행 비행기를 탔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우선 거리가 멀다. 땅에다 버리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개인연금신탁
판매등 지점일도 바쁘기만 하다. 그래서 그냥 마음만 가족에게 오는
주말이 많아졌다고 한다.
L지점장이 지금의 "홀아비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2월. 경남H지점장으로
발령받으면서부터 였다. 처음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 첫점포장인걸 어쩌랴.
처음 지점장이나 출장소장이 되는 사람의 경우 대개 지방점포로 발령
내는게 은행들의 관행이다. 밑바닥생활부터 시작해 능력을 발휘해보라는
뜻에서다. 그래서 L지점장은 은행의 "명"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서울토박이인 L지점장이 지방생활을 한건 이번이 처음은 물론 아니다.
13년전 행원에서 대리로 승진했을때도 지방점포로 발령이 났었다.
그러나 그때는 "홀아비"는 아니었다. 자녀들이 어렸기때문에 4가족 모두
가 이사할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큰 아이가 "고3"이고 둘째가 "중3".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수험생
이다. 함부로 학교를 옮길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두집살림을
시작했다. 자신은 은행관사에서, 부인과 자녀들은 서울집에서.
L지점장은 "이 생활을 앞으로도 1년6개월정도는 해야한다"는 각오로
"홀로서기"에 노력하고 있다.
지방발령. 은행원치고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은행들은
인사를 할때 근무지역에 관한한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하려 애쓴다.
원하는 지역에서 일해야 생활도 안정되고 능률도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6개월마다 한번씩 "자기신고서"를 받고 있다. 희망하는 근무지역
과 부서를 1,2,3지망순으로 조사, 인사때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
근무의 우선 대상은 본인이 희망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희망자만 지방점포에 보내지는건 아니다. 지방근무는 서울근무
보다 아무래도 인기가 떨어진다. 희망자로만 전체의 50%정도인 지방근무
인원을 채울수는 없다.
이럴 경우 대리나 차장 지점장등의 자리에 막 승진한 사람들이 우선적
으로 지방점포로 보내진다.
은행원들 대부분이 초임대리 초임차장 초임지점장을 지방점포에서 지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실적이 나빠 "강등"된 지점장이나 대기발령에서
해금된 직원들도 지방점포행 기차의 단골손님이다.
그래도 점포장은 낫다. 관사나 사택이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기관장회의의 정식멤버가 될 정도로 지역사회에선 끗발있는 기관장
으로 대접받는다.
윗사람 눈치볼일도 없어 신간은 편하다. 가족문제만 해결된다면 말이다.
차장급이하는 사정이 다르다. J은행의 C차장(44)의 경우를 보자.
C씨는 처음 지점차장노릇을 대구지점에서 했다. 대구는 태어나서 몇번
가보지도 않았던 도시. 당장 숙식이 문제였다. 가족 모두가 이사간다면
문제도 아니었다.
은행에서 임차보증금으로 최고3천5백만원을 거저(연1%)빌려주기 때문에
돈걱정도 없을 터였다(가족모두가 이사하지 않으면 임차보증금은 빌릴수
없다).
그러나 노부모가 서울에 머물기를 고집했다. 그래서 할수없이 찾아든
곳이 은행의 대구지역합숙소. 비싼 하숙비대신 실비만 내고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은행원들 모두가 지방점포근무를 꺼리는것은 물론 아니다. 지역에 연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젊은 행원이나 대리중엔 지방근무를 희망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우선 교통 공기등 근무환경이 좋다. 서울에 집칸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임차보증금을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다. 즉 서울집을 전세주고 자신은
연1%짜리 돈을 빌려 생활, 이자차액을 챙길수 있는 것이다.
또 어차피 해야할 지방근무인 이상 경력관리에도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인사철마다 지방에 내려가는 사람은 대형은행의 경우 은행당 5백여명에
이른다.
어떤 은행들은 아예 지방점포 1번,서울점포 2번식으로 정기순환근무를
시키기도 한다. 은행들은 사고예방을 위해 한 점포에 2년이상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인사철마다 4분의1정도가 움직인다. 또 "대이동"의 계절이
온 것이다.